자판의속삭임

본과 4학년 2학기 11월 넷째 주 : 에우리디케 앞에서

펜에게서 자판에게 2019. 11. 25. 01:44

#1

본과가 끝나간다. 국가고시의 필기가 일월초에 있기 때문에 12월에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잘 들지 않아서 지금 자판을 조금 두드린다. 실기시험을 앞뒀을 때의 기분이 꼭 입대를 앞둔 사람의 심정마냥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고, 즐겁지 않았는데 졸업과 수련을 앞둔 지금의 심정도 비슷하다.

역행하는 인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내게 커다란 문을 빠져나와 한 시공간을 넘어갈 때의 여운은 모질게 느껴질 정도로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행복한 기억, 후회스런 기억, 떨쳐내지 못한 것들이 한데 뒤섞여 고삐풀린 망아지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뛰어다닌다.

연말이라는 시간은 으레 그런것이다.



#2

인사에 실패했다. 사람의 일이라는 인사와 실패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무척 딱딱하고 척 보기에도 인간관계에 서투른 인상을 주는 표현이다. 그만큼 나의 사람 대하는 것은 이번에도 어설프고 미숙했나보다. 이럴때면 괜스레 나는 박군을 보고싶다. 심적으로 무너졌을 때 내게 전화를 해대는 박군은 인간관계에서 늘 상처를 받고 머리를 쥐어뜯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삶을 찬미한다. 그에 비해 인사로 그다지 상처받지 않는 나는 박군의 예찬만큼이나 큰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3

여행을 다녀왔다. K형, K군과 함께한 마지막 졸업여행으로 본과생의 일기장에 마지막 책갈피를 끼웠다. 여행도 많이 다녀 무디어진 것인지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도시를 걸으면서도 센티멘탈리즘은 없었다. 안락하고 편안한 사치에 섞인 적당한 최후의 만찬이 있었을 뿐.



#4

조커를 보았다. 사람들이 그리 관심을 가지지 않을 연초부터 트레일러 영상을 혼자 열댓번씩 돌려보면서 감상에 빠졌는데, 내가 기대했던 방향과는 조금 영화가 다르게 흘러갔다. 조커라는 캐릭터를 내가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유학파 박군이 영화에 제대로 심취해서 흥분하여 매일같이 OST를 술처럼 권했다. 학창시절 우리가 소설을 읽지 않는 문학선생님 밑에서 아나키스트라고 자칭했던 것이 생각나서 웃음이 나왔다. 제도권의 틀 안에서 영구히 살아가다보면 가끔씩 모든 것을 때려부수고 싶은 욕망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세상을 파괴하는 것만큼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5

라라랜드도 보았다. 여행중 기찻간 안에서 보았는데 역시 생각만큼 낭만적이거나 추억이 돋아나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나서는 가슴에 먹먹하게 울리는 여운은 뭘까. 역시나 OST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며칠을 허우적거렸다. 사랑과 성공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고전적인 소재지만 그 끝은 오늘날까지도 날카롭게 빠져나와 있다. 당장 떠오르는 영화만 해도 몇개를 댈 수 있다.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vs 놀이를 하면 나는 성공 vs 사랑을 놓았을 때 어느 쪽을 고를까? 신웃음이 나왔다.



#6

의도한 것은 아닌데 책받침으로 쓰던 카프카의 책이 책상 구석에 놓여 나를 바라본다. 재미있게도 프란츠 카프카의 책은 대부분 표지에 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부리부리한 콧날과 눈썹, 도깨비 같은 눈을 치켜뜨고 내게 속삭이는 것 같다. '너도 결국 성에 도달하지 못할 거야'

카프카의 옆자리 그리스 로마신화를 냉큼 뽑아 몇 줄을 읽었다. 모든 것들의 머리를 숙이게 만든 리라의 주인 오르페우스조차 에우리디케만은 지상으로 끌어올리지는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차분해졌다. 카프카의 얼굴에 신화를 힘껏 던지고 누웠다. 그가 저승에서 거문고자리의 음악을 연주할 때, 에우리디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