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의속삭임

내과1년차 8월 소화기내과 : 입원기록지

펜에게서 자판에게 2022. 12. 17. 18:46

#1 

 

인생을 살다보면 몇 번쯤 변곡점이라고 부를만한 커다란 분기점이 나타나는데 이때의 내게 닥친 일이 꼭 그랬다. 매사 허약하기는 했어도 나름 버티고 참는 것 하나만은 자신있다고 생각해왔었는데, 몸의 악화는 단순하게 부러지지 않으려는 안간힘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크게 몸이 아퍼 입원하게 되었다. 내내 입원하는 환자의 기록지를 쓰고 들여다보고 수정하고, 작성하면서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다가 반대로 내가 누군가의 환자가 되어 입원하게 되니 느낌이 매우 이상했다. 가볍게 입원해서 조절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기에 응급실을 경유해서, 준중환자실을 경유해서 일반병실까지 침상에 안정을 취하면서 도달한 나날은 무척이나 꿈처럼 아롱거려왔다. 처치실에서 모니터를 달고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이 기억에 있음에도 나는 나중에 보호자의 입을 통해서 깨달았다. 아마 몇번쯤 했던 구역질로 항구토제가 들어가면서 기분이 몽롱했던 탓인지도 모른다. 

 

의사로서 바라보는 환자의 고통과 통증은, 환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수롭지 않게 비특이적인 통증이라고 여겨 진통제를 조절했을 만한 통증이 나의 일상생활에 큰 제약으로 다가온다는게 무척 난감했다. 나는 수차례나 아픔으로 침상에서 밥을 한숟갈 뜨고 드러누워서 끙끙거리고, 다시 일어나서 꾸역꾸역 수저를 놀리고 다시 드러눕고를 반복했다. 

 

 

#2

 

긴 당직의 밤을 지새우고 입원을 하게 되었던터라, 그날의 당직시간에 마지막으로 연락받았던 환자가 떠올랐다. 그 환자도 나처럼 젊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말기의 환자였고. 예고되지 않은 상태 악화에 나의 당직실 불은 꺼지지 못했고 끝내는 나도 과열했던지도 모른다. 그의 마지막은 어땠을까, 보호자에게 했던 내 설명이 다소 불완전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납득했을까. 누가 백업을 해주었을까. 그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헛구역질이 난다. 

 

한차례 크게 아프고나니 삶에 대한 회의감과 무기력함이 한동안 찾아들었고. 한달가깝게 근무를 쉬었다. 삐걱이는 몸을 가누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던 것 같았고, 아직도 이따금씩 찾아오는 통증이나 두통은 나를 떨게 만든다. 오히려 아는 것이 독인지 까딱했으면 수술에, 중환자실에 인공호흡기까지 유지했을뻔 했다는 상상은 나를 심해로 빠트린다. 

 

스무살, 서른살 정도의 나이차는 젊었을 때에는 무척이나 큰 나이 차에 해당한다. 초등학생과 30,40대의 직장인을 동일선에 놓고 비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해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를 볼 때면 60세에서 90세까지의 환자들의 악화에 우선순위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고나면 스스로 더이상 스무살의 충전이 금방금방 되는 몸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몸살이 나도, 운동으로 근육통이 와도 괜찮아지는데에 이전보다 시간이 더디다. 열댓살 나이가 많은 사촌들에게 삼십대부터 간간히 아프고 사십대쯤 되면 건강이 걱정되어 몸을 돌아보고 의무적으로 챙기게 된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는데 그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구나 싶었다.

 

부지런히 살기 위해서, 생존을 위해 운동해야 하는데 아직 지낼만 한 것인지 아니면 게으름이 부지런함보다 강한 탓인지 충분한 운동은 아직도 하지 못하고 있다. 최소한의 운동만 근근히 해내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초조하고 불안감을 느낀다. 전공의 시절이 가장 힘들고 그 시간이 끝나면 그래도 살만해진다는 선생님들의 말은 정말일까? 왜 내게는 이따금 시술을 마치고 진료시간에 맞춰 허겁지겁 일정을 보내는 그들의 삶도 우리만큼 여유가 없고 힘들어보이는 것일까. 한번 터지고 난 나의 건강을 떠올리면 몹시도 두렵고 겁이 난다.

 

 

#3

 

어느 무리에 속해있던 군소리없이 따라가는 일만은 그래도 나름 잘할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그런데 한번 몸이 아프고 그 시간만큼 일을 비우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여지껏 해본적 없던 땡땡이를 거하게 치면서 누군가에게 나의 일을 그대로 던져서 엎혀가는 것처럼 말이다. 

 

의학드라마에 보면 가끔씩 힘들어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던져두고 도망가는 전공의가 나온다. 아이러니한것이 쉬이 도망갈 것처럼 보이고 문제가 있는 전공의는 같은문제가 불거질까 오히려 윗사람들이 쉬이 대하지 못한다. 나름 웃픈 현실이 잘 반영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오늘날의 내 꼴이 그렇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누군가의 백업이나 지원을 은근히 받는다는 점이 편하고 마음이 놓일때도 있어서 기대고 싶어지고 느슨해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땡땡이도 치던 사람이 잘 친다고, 마음이 나약하고 영악해졌다. 어쩔 수 없이 삶에 관조적이 되면서도 그런 내가 혐오스럽고, 그러면서도 내 스스로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된다. 

 

 

#4

 

입원부터 하반기에는 너무나 많은 일이 역동적으로 있어왔고 인생에 있어서 큰 변곡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성숙해지고 나은 사람이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스스로 느끼기에 그렇지 못한 것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찔려온다. 천천히 시간이 되어 하나씩 풀어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연말은 남은 전공의들에게 힘든 시간이기에 쉽지는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