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의속삭임

9월 : 의료의 역사, 이립而立의 개인사

펜에게서 자판에게 2024. 10. 29. 02:20

 

 

 

#1

 

사직한 전공의들과 학업을 중단한 학생들 대다수의 마음을 상상해 볼 때가 있다. 온라인을 통해 느껴지는 분위기는 분노 그자체에 휩쌓여있고, 바깥에서 만나는 동기들은 허탈함과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한 분주함으로 허탈함을 채워나가는 모습들이었다. 

 

반년이라는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너무나 길고, 나라는 사람은 넘치는 시간 속에서 초조함을 느끼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회의감이 든다. 하루에 한두개씩 외국어를 공부하고 내과학술강의를 듣고. 그런 것들이 나에게 있어 지금 의미있는 행동일까? 나의 마음속 심지에 전혀 불길이 닿지 않는 그저 명멸하는 불씨만 뿌리는 행위가 아닐까? 

 

 

#2

 

나를 제외한 같은 과 사람들이 전원 복귀를 결정했다.

 

마음이 참으로 답답하여 울분이 일어 하늘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기도 하고, 감정의 파도는 돌아돌아 마지막에는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우울감의 해구에 빠졌다. 해구의 깊이는 실로 깊고도 어두워서 때로는 의사라는 업, 나의 삶, 내 뒤에 놓인 생까지 이따금씩 좀먹어 들어왔다. 미래의 선택에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과거의 선택조차 맞는 것인지 회의감이 들 때 정말 나의 존재가 뿌리채로 뽑혀 날아갈 것 같았다. 나는 앞뒤가 모두 돌연 낭떨어지가 된 것마냥 옴짝달싹도 못하고 주저앉고 싶어졌다.

 

고민을 물어볼 곳도 없었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토로할 수도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일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밤이 깊어도 마음이 몹시 심란해 잠이 오지 않았다. 각자도생의 길을 생각하여 나도 내 앞의 길만을 바라보고 작은 하나의 돌로 살 것인가. 혹은 바둑판 전체를 훑어보면서 버려야 할 집들을 버리고, 내가 그리고자 하는 대마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3

 

단순하게 얼굴을 내리깔고, 나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복귀를 할수도 있을 것이다. 직업사회가 좁다고 하나 어차피 닫혀진 사회속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들에 관심을 쏟을 정도의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지 않는다는건 나도 너무 잘 알고있으니까. 역사를 버리고 기회에 몸을 싣고 떠난 자들의 말로가 단 한번이라도 비참했던가? 그랬던 적이 있었던가? 

 

학생시절 교양역사를 공부하면서, 세상은 역사와 개인사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웠던 것이 떠올랐다.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는 굵직한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된 위인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 밑에는 수많은 개인의 개인사가 함께 흘러가고 있다. 개인사는 역사에 기록되지도 않고,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4

 

직장의 동료들을 떠나 낭떠러지의 마지막에 끝에 내 이마의 끝에 지고 있는 사람은 사실 가족들이었다. 가족들은 나의 결정을 언제나 중시하지만 나 역시 그들의 의견을 중시한다. 그들에게 있어 의료의 오늘날의 지대한 갈등과 사태는 머나먼 일로 다가올 것이며 그 앞에 놓인 나의 안위와 나의 미래가 보다 현실적인 걱정에 있을 터이니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때문에 고민을 할 때가 많다. 그것이 좋은 길이거나, 좋지 않을 길이거나를 떠나 화목하고 평온한 길일수는 있기 때문이다.

 

 

#5

 

불현듯 병원을 은퇴하시고 당신의 작은 병원을 개업하여 일하고 계신 정신과 교수님의 의원에 실습을 나갔던 것이 생각났다.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체 게바라를 이야기 했을 때 교수님은 걱정과 동경을 모두 표하셨고, 마지막에는 그래도 본인의 길을 끝까지 지켜나가길 바란다는 말을 하셨다. 

 

쿠바의 오늘을 떠나서, 나는 그의 도전적인 정신은 인간으로서 늘 품고가야하는 칼과 같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순간에 있어서 내게 늘 떠오르는 것은 그런 것들인지.

 

우리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품자. 

 

 

#6

 

도외지나 지방으로 차를 타고 운전을 할 때 가끔씩 아내에게 지적을 받는다. 아내는 나보다 운전경력도 훨씬 길고 서울시내 운전에도 능숙한 편이기에, 나는 속으로 구시렁대기는 하지만 별 저항없이 아내의 지적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아내의 평에 의하면 나는 상당히 방어적이고 느슨하게 운전하는 편인데, 가끔씩 놀랄정도로 빠르게 움직일 때가 있다고 한다. 

 

인생에 있어서도 그렇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한다. 나는 판단이 느리고 느슨하고 대체로 둥근편이지만 가끔씩은 내 스스로 내키지 않으면 굽히지 않고 싶어하는 모난 마음이 있다. 흔히 말하는 반골기질일 수도 있고. 얼어죽은 선비기질일수도 있다. 그리고 대체로 그런 선택들은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나 혼자 죽을때까지 묻어놓고 가는 선택들이 되고는 한다. 마치, 개인사처럼 말이다.

 

 

#7

 

문뜩 공자의 위정편에서 그가 나이에 따라 깨달음의 이치를 이야기 했던 것이 생각났다. 십대가 지학이었던 것과 마흔이 불혹이었던 것은 떠오르는데 서른이라는 나이를 두고 무엇이라고 했는지가 기억나지 않아 찾아보았다.

 

그는 서른을 두고 '이립'이라고 하였다. 당연히, 모르는 한자였기에 뜻을 찾아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렇구나.

 

역사의 주인이 되기 이전에 개인사의 주인으로서, 나는 후회하더라도 내 삶의 머리로서 사는 삶을 살고싶다. 

 

 

#8 

 

병원을 찾아가 긴 시간을 들여 인사를 조아리는 동안 나는 적어둔 편지를 내심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품안의 편지는 봉투가 열리지 못한 채 끝내 서랍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나의 온전한 출사표는 밖으로 드러나지 못했고, 긴 시간 매만지던 글조각도 늦은 삼경마다 자판위로 올라오고 내려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나는 여전히 내 생의 본질이 쓰는 것에 있다고 믿기에 부족한 글이나 휘발되기 전에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