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오케스트라축제-한예종
#1
학교 밖으로의 일탈을 꿈꾸던 김군과 몇 주나 계속 이야기했던 음악회를 갔다. 막상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 한 학기가 꺾일 만큼의 시간이 걸렸던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나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나는 음악에 대해서, 예술에 대해서 그리 잘 알지는 못한다. 아는 척을 조금은 할 수 있겠지만, 비유하자면 그것은 전문가의 영역에 대해 비전문가가 가지는 아는 척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예술에 대해 내가 취하는 평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감상적이다. 어처구니 없을만큼 비유를 펼치고 그 바닥을 기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내심 아무런 주춧돌도 없는 무에서 만들어진 생각들이야말로 유아적으로 재미있고 유쾌하다고 생각한다.
장황하게 둘러썼지만, 나는 예술에 있어서는 문외한에 가까운 편이다.
#3
연주회의 곡 목록을 받아들고서는 더 난감했는데, 짧은 내 식견으로는 어느 쪽도 알지 못하는 곡이었기 때문이다. 행여나 연달은 시험기간으로 떡이 된 체력 덕분에 '그대로 공연 중에 잠들어버리면 어떻게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익숙한 곡, 들어본 곡과 전혀 모르는 곡과의 공연 집중도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낯선 가수의 공연을 보러갈 때의 걱정과 비슷할 수도 있다. 예매는 했는데 아는 곡이 없는데...
#4
공연을 보기 전에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연주회장 밖의 시간은 아름답고 허영스럽다. 사교의 장이 된 것처럼 여유있는 사람들 사이를 누비면서 나는 알 수 없는 감상에 빠진다. 센티멘탈리즘? 허무주의? 혹은 곧 클라이막스를 찍고 끝나갈 축제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슬픈 기분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제주도로 일주일 정도 캠프를 떠났던 적이 있는데, 이틀 째에 내가 7일 중에 2일이 지나갔는데 2/7만큼의 가치를 여행 속에서 발견하지 못해서 초조하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학업에 얽매인 속좁은 중학생이 할법한 소리였고, 지극히 나다웠다.
#5
R. 스트라우스라는 작곡가도, 알프스 교향곡도 역시나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곡의 초입부에서 길게 늘어지는 긴장상태의 계속됨이 퍽 내 취향이었다는 것. 맹수스러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시위가 당겨진 긴장상태의 활로 바이올린과 첼로를 멋지게 유지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느낌으로 다분히 독일스럽다고 생각했다. 아주 오래된 '프리츠 랑'의 영화에 나오는 테마가 꼭 떠올랐기 때문이다.
머리를 뒤로 묶어 이마를 시원하게 드러낸 수석 바이올린의 왼쪽 어깨 너머에 앉은 사람이 중간에 독주로 내는 긴장음이 너무도 훌륭해서 하마터면 공연 중에 혀를 찰 뻔했다 . 수많은 금과 나무악기들의 웅장하고도 낮은 소리가 좋았다. 악기도 물론 그렇지만 나는 짐승의 울음소리도 낮은 소리를 좋아한다. 이과적으로 말하자면 주파수가 낮아, 목청의 저 깊은 곳에서 떨려 새벽 안개를 뚫고 낮게 울리는 소리들 말이다.
#6
처음에는 요한 스트라우스를 찾아보고 오스트리아 사람이었네. 틀렸군. 생각했는데 알프스 교향곡의 작가는 R. 스트라우스였고 그는 전형적인 독일 작곡가였다. 빙고. 제법인데 내 감수성?
앵콜 곡은 없었지만, 홈그라운드에서 치뤄진 연주였기 때문인지 관객층이 젊은 학생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인지 환호성은 대단했고 지휘자는 몇 번씩이나 거듭 인사를 하고 연주자들을 일으켜 소개하고 박수 앞에 기립하게 했다. 수백, 수천의 청중들로부터 쏟아지는 박수를 받는 기분은 어떨까. 나는 영광의 피날레 앞에 선 기분을 잠시 상상했다.
#7
내가 밀키스를 홀짝이곤 김 군에게 말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예술을 할 때의 모습은 정말 멋진 것 같아. 빛이 나더라고."
실제로 곡을 알고, 모르고는 내 기준에서 공연을 보는데에 있어서 전혀 중요치 않았다는 것을 나는 다시금 생각해냈다. 어떤 공연이든 나는 초입부의 몇 분 동안 몸에서 열이 훅훅 올라오는 것을 늘 느낀다. 단순히 실내가 더워서라기보다는 몰입하는 그들의 불꽃이 내게로 날아들어 뜨겁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늘 불꽃 같은...
"수석 바이올리니스트가 특히 눈부시던데?"
김 군이 빵또아를 힘껏 한입 물면서 중얼거렸고 나는 그를 보고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