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 2학년 2학기 12주차 : 육첩방과 애드거 앨런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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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에 들어온 꼭 이맘때쯤 비좁은 꿈을 꾼다. 사사로운 것들을 잘 기억한다고 자신하는 편이지만 꿈은 꼭 사막 위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모래줌처럼, 한 모금의 신기루 속 오아시스처럼 흘러나간다. 나는 꿈의 끝자락을 놓치지 않고 쥐기 위해 시계추 소리를 끊임없이 센다. 스물셋, 스물넷, 스물...
그때쯤의 기억들이었다. 인생에 있어서 단 하나의 후회를 고르라면 반드시 첫 번째로 떠올릴 일. 나는 어쩔 수 없이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던 비겁한 주변인이었고 세상은 나에게 무엇인가 선택을 강요하듯이 손가락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 표를 내면 다음 역으로 갈 수 있는거에요?"
그는 비쩍마른 얼굴에 굽은 어깨를 조금 더 숙여서 승차권 위에 적혀진 글씨를 보고 찌푸린 한쪽 눈으로 저쪽을 가리켰다. 나는 커다란 가방을 부둥켜안고 조금 초조해져서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가면서 바라보았다. 많고도 구차한 이유를 찾으려면 찾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한가지 정도의 납득할만한 이유는 있을거야라고 생각하며 나는 기차 위로 발을 옮겼다.
돌이켜보면 그는 내가 표를 내밀었던 순간부터, 어쩌면 내가 우물쭈물거리면서 제대로 짊어지지도 못하는 가방을 들고 뛰어들어온 순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를 거기에 남겨두고, 지나쳐 다음의 역으로 향할 것이라는걸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말을 붙이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다시 되돌아가도 나는 똑같이 흔들리는 눈을 하고 그에게 물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저는 다음 역으로 가야만 하나요?"
그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을뿐. 나는 움켜진 손 안의 글자를 읽다가 두고온 것들을 훔쳐보았다가를 반복하다가 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끊임없이 꿈이 반복되고 그것이 설령 가장 후회되는 머리맡으로 향하는 기차일지라도 나는 여전히 같은 여정에 오를 것이라는 것을 안다.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나는 두고온 세상이 멀어지며 중얼거리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어두운 방으로 빠져 나오기 위해서 끊임없이 숫자를 센다. 스물일곱, 스물여덟...꿈의 기억은 사라지지만 뒤늦게 찾아오는 비좁은 밤의 외딴 어둠에 나는 더욱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