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행기4 : Cardinal Bird와 Animal Burger
어디보자...어디까지 여행기를 적었더라. 여행기는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싱싱한 머리로 적는 것이 제맛이겠지만, 나는 한참이 지난 뒤에 묵은 사진을 다시 돌이켜 돌려보면서 여행기를 적는다. 지나간 일화기억에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게 세세한 부분을 기억함으로써 마치 한번 더 여행을 갔다온 환상에 젖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입부가 이렇게 긴 것은 저번에 어디까지 적었는지 기억이 안나서 그렇기도 하다.
박군과 과학관에 나와서 지인의 픽업을 받아서 놀기위해 왔다. 뭐라고 부르는 곳인지는 잊어버렸는데 대충 아케이드 게임과 오락을 할 수 있으면서 한쪽에서는 저녁을 먹을 수 있는(보통 패밀리레스토랑의 메뉴)곳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데 외국에서는 놀이와 식사가 함께 붙어있는 곳이 꽤 흔한 것 같다. 우리나라도 오락실은 있지만 미국은 훨씬 활동적인 오락, 주로 몸을 움직이는 아케이드 위주의 게임이 많았다. 게임을 하면 코인방식으로 점수를 적립해주는데 그 점수가 높으면 상품을 가져갈 수도 있는...그런 꼬마아이들이 아주 정신줄을 놓을만한 장소이기도 했다. 만만해보였지만 게임은 대체로 난이도가 높았고 감자튀김과 고기는 그냥 미국에서는 흔한 맛이겠지만 어지간한 패밀리 레스토랑을 무릎꿇게 할 정도로 훌륭했다. 생각해보니까 영화 토이스토리에 나오는 그 우와앙 하는 외계인들의 인형뽑기가 있는 가게가 이런 곳이었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으로 먹은 브리또와 살사소스. 미국에서 먹은 아침은 진짜 충격적으로 맛있었다. 지금 내가 이걸 한밤중에 써서 더 그럴수도 있겠지만.
LOWE's. 우리나라로 치면 가정용품을 파는 잡화점이라고 해야되려나. 가구부터 시작해서 공구까지 온갖 것을 망라해놓았다. 갔던 이유는 지인께서 집 창고에 쥐가 있는 것 같다며 쥐덫을 사기 위해서 였다. 멀뚱거리며 구경하다가 주변에 전갈표시가 있는 약이 있길래 미국은 전갈이 흔하게 나오냐고 물었다. 동네에 따라서 자주 보이는 벌레정도로 취급된다고도 한다. 와우.
술에 일가견이 있는 지인이 모아둔 찬장? 자신만의 술 보관장소?
술을 그리 잘 알지 못하는 나는 설명에 음음. 할수밖에 없었고 시험삼에 60도였나 70도였나 하여간 난생 처음 보는 높은 숫자의 보드카였나 위스키였나를 조금 따라마셨다. 한국식 스타일로 화끈하게 원샷을 했다가 식도가 화끈하게 타들어가는 맛을 느꼈다. 진짜로 1.5초정도 토할뻔했다. 향이 좋았는데 음미하면서 마셔볼걸 아쉬웠다.
오전에는 빈둥거리다가 번화가로 나갔다. 번화가였음에도 평일 오전이었기 때문일까. 분수대는 켜져있었지만 사람은 우리뿐이어서 나는 한가함에 몸을 바싹 말리면서 하품을 했다.
무려 71년도부터 도넛을 만들어온 도넛명가?
겉으로는 완전히 새 가게였는데, 어쨌거나 가게에 들어가 도넛을 먹었다. 지인도 늘 가보고 싶었는데 처음가보는 가게라고 했는데 아주 아스트랄한 맛의 도넛들을 팔았다. 베이컨 튀김, 커피콩 튀김 등등. 달고 짜고 자극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단맛과 짠맛이 섞이는 것을 선호하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낯선 음식이기에 흥미로웠다.
AMC영화관. 우리나라로 치면 CGV같은 포지션인 것 같았다. 왠지 알파벳도 3개니까. 그래야 될 것 같았다.
빈 수평선의 도로가 보여서 찍어보았다. 아포칼립스 영화에 나오는 분위기 같은데. 미국은 워낙에 땅이 넓었기 때문인지 무척 한적한 도로들도 많았다. 미국에 도착한 첫날 TV를 틀었더니 조금 전 지나왔던 Highway에서 사고가 나서 사상자가 나왔다는 뉴스가 나왔지만 그리 와닿지 않았다. 지인에 의하면 대부분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만큼 무척이나 교통사고가 잦다고 했다.
애리조나AZ 피닉스에 있는 풋볼경기장. 상징인 Cardinal Bird의 마스코트가 그려져있다. 내가 여행갔던 시기가 그....미국이 미쳐 날뛴다는 슈퍼볼 시즌이었다. 게다가 딱 결승을 몇 경기 남겨둔 후보 중에 애리조나 팀도 속해 있었다. 나는 풋볼의 풋자도 잘 모르지만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아쉽게도 애리조나 팀은 결승행 직전 게임에서 끔찍한 대패를 당하며 떨어졌다. (지인께서 광분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사냥, 낚시 등등의 용구를 파는 잡화점. 보트를 파는 것을 보면서 역시 미국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냥 매니아들에게 있어서 지역적으로 유명한 동물들을 박제해놓은 전시회장 비슷한 곳도 있었다. 미디어의 영향인지 서양에 대한 막연한 동경인지 나는 사슴의 뿔을 장식하거나 동물의 가죽을 장식한 것이 무척이나 멋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지인의 말로는 다수의 미국인들은 동물의 머리를 벽에 걸어놓는 것을 무척이나 기괴한 취미로 여긴다고 한다.
그리고 총도 판다. 19$라고 쓰인게 보인다. 2만원돈이면 총을 한자루 살 수 있다니 다소 충격적이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과 직원들이 총기류 코너에서 이야기를 하고 거래를 하고 있었다. 총기거래에 대한 자격심사는 꽤 까다롭다는데 어쨌거나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물건과 장면이었기에 자연스러운 화기의 유통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애리조나와도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동네를 쭉 한번 돌아보았다. 미국은 생각보다 집 근처를 산책하는 일은 낯설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어디를 갔다왔냐고 물어보셨는데 그냥 걷고, 눈에 하나하나 넣어두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 죽을 것을 알고 주인에게서 멀어져서 한번 가출했다는 신비롭고도 똘망똘망한 이력이 있는 이 멍멍이와도 작별의 인사를 했다. 기념으로 수영장 주위를 한바퀴 씽씽 돌아주었다.
마지막 날 밤의 만찬...은 아니고, 야식으로 먹었던 인앤아웃버거. 지인의 가족인 내 또래의 말에 의하면 미국에는 3대 버거가 있는데 서부의 인앤아웃, 동부의 쉑쉑(우리나라에도 들어온 그 쉑쉑) 그리고 하나 더 알려줬는데 잊어버렸다. 저 프랜치프라이에 고기를 얹고 소스를 말도 안되게 끼얹은게 애니멀프렌치였나, 버거 이름이 애니멀 버거였나 그랬는데 여하튼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매우 좋다는 것 같았다.
조금 배가 불러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처음 미국에 도착한 날 지인이 데려갔던 곳에서 먹었던 버거가 조금 더 맛있었던 느낌이었다. 패티를 구운 연기가 자욱한, 자신이 어려서부터 있었던 햄버거집이라고 했는데, 가게 주인도 분위기도 시크하기 그지없었고 배가 고파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버거는 정신나갈정도로 맛있었다. 맛의 보증수표 박군이 두번 먹어보고 인정했으니 어 인정. 어쨌거나 미국의 햄버거에 관해 확실한건 하나 있다. 길가다가 먹은 미국의 햄버거는 한국의 버거가게들에게 '입 벌려라. 빅맥들어간다'라고 충분히 쏘아붙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