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 3학년 1학기 일반외과2 : 실신
#1
나에게는 아주 고질적인 신경학적인 질환이 하나있다. 미주신경성실신, 혹은 단순하게 실신. 신경과적인 용어로 syncope라고 부르는 것이다. 특정한 유발원인으로 혈압이 떨어지게 되고 뇌로가는 혈류가 감소하게 되면서 어지러움을 느끼고, 앞이 핑핑 돌면서 쓰러질 것 같은 증상이 찾아온다. 오심, 두통, 열감, 이명 등이 전조증상으로 책에 나와있는데 역시 의학적 용어와 환자가 느끼는 표현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는 생각이 든다.
실신 전의 핑 하는 어지러움보다 시각적으로 앞이 노랗게, 캄캄해져가는 것이 조금 더 빠르다. 온몸의 힘이 쭉쭉 빠지면서 온몸에 식은땀이 흐른다. 귀가 멍멍해지면서 그대로 있으면 힘이 빠져나가서 멍하게 되어 쿵! 하고 쓰러지기도 한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정확하게 어떤 증상인지를 몰랐기 때문에 그대로 쓰러진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기운이 없었기 때문인지 넘어질 때는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나중에 괜찮아 지고나서 일어나면 온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아펐고 찢어질듯한 두통이 얹어졌다.
#2
오랜만에 지도교수님과 저녁을 함께했다. 새롭게 들어온 신입생에게 우리의 관심이 쏠렸고 자연스럽게 입학식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후배는 입학식 당시에 있었던 총장님의 연사가 너무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쉬운 말로 사람들에게 진심과 감동을 전하는 것은 참으로 타고난 능력이며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을 지도교수님과 함께 했다. 아는척 지지부진한 말들로 씌여진 나의 글들이 생각나서 쓴웃음이 나왔다.
#3
병원에서 회진을 따라다니다보면 그런 상황을 종종 마주치게 된다.
환자분 혹시 xx신드롬이라는 현상을 들어보셨나요?
들어봤을리가 없다. 그럼 이내 특정 질환이나 현상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진다. 환자는 끄덕끄덕 이해와 모름의 중간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자리를 넘긴다. 아마 환자는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조금 더 쉬운 설명을 통해 한번 더 말해준 내용을 찾아볼지도 모른다.
#4
잘 훈련된, 지식적으로 어느정도 우수한 집단에 있다보면 다들 어려운 말들을 자연스레 흘려쓰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대화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게 해주고 용어의 미묘한 차이를 통해 의미를 분명하게 해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환자에게도 도움이 되는지 조금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고등학생시절 수학선생님이 연설을 잘하기로 유명했던 어느 정치인의 이야기를 하면서 한문장에 쉬운, 7개의 단어. 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 생각난다. (7단어인지 사실 좀 기억이 흐릿하다) 담백하고도 누구나 알아듣기 쉬운 글과 말. 활자에 주인이 있다면 분명 그는 짧고도 분명한 글을 쓰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5
교수님과의 식사자리에서 부쩍 이야기를 많이 주도하고 끌어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으면서 학년이 오르긴 올랐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부가 늘었거나 자리가 조금 편해진 것일 수도 있지만 나의 저학년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에 그랬던 것도 있다. 교수님을 처음 대하는 자리는 마냥 어려웠고 음식도 코로 집어넣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가 끊겨서 침묵이 찾아오는 것도 나의 잘못처럼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런 걱정없이 누군가가 이야기를 계속 해주고 자리를 부드럽게 이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보일까? 혹은 그저 나이들어 비위를 맞춰가는 사람에 불과한걸까.
#6
늘 대외적으로 활동을 많이 하는 교수님들은 전문가 이외의 영역을 강조한다. 자신의 직업 외에 다른 강점,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을 꺼트리지 않고 계속 살려서 이어가라고. 들을때마다 다트를 휙휙 던졌는데 하나의 실로 이어졌다는 잡스의 이야기가 계속 떠오른다. 나는 과거에 정치판에 뛰어드는 학계의 사람들, 흔히 폴리페서로 불리는 교수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가치실현이며 자신의 길을 계속 찾아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서 조금 이해하게 된 것도 같다.
그러고보니 동아리에 들어온 신입생이 VR과 컨텐츠 제작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를 하길래 죽이 잘 맞아 한참을 떠들었다. 공상을 좋아하는 나는 언제나 내가 써낸 소설의 세상 속에 있고 싶었다. 그러기엔 나이가 조금 들어서 회식자리에서 사회를 맡아야하는 입장이 벌써 되었지만 말이다. 어른이 되었다는 감각은 여전히 씁쓸하다.
#7
새로운 병원에서의 실습 첫날 계단을 허겁지겁 뛰어올라 왔더니 실신이 찾아왔다.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한참이나 하고서야 괜찮아지고 다시는 계단을 뛰어서 7층씩 올라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운동부족을 먼저 해결해야 하는데...일단 외과턴이 끝난 다음에 생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