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3학년 1학기 정신건강의학과2 : 마음의 창
#1
다른 과들도 대부분 그렇지만 정신과는 특히나 환자의 개인정보에 민감하다. 환자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는 것은 꽤 민감하고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나도 적당히 애두르며 세세한 내용은 빼고 적게 된다. 내가 환자 이야기를 적는 것은 나의 개인적인 감상을 적기 위한 것이기에 받았던 인상 위주로 적는 편이긴 하지만 말이다.
#2
정신과 초진환자를 교수님과 같이 보는 귀중한 기회가 생겼다. 어린 학생이었는데 몇 번이나 학교에서 괴로운 일을 겪고 쉴새없이 펑펑 울음을 터트리고 방황하기도 하고 일상 생활이 힘들어졌다고 했다. 환자는 스스로 우울증이 아닐까 생각하고 인터넷을 찾아보았다고 한다. 그리곤 우울증이 뇌의 기능을 망가트려서 상처처럼 남을 수 있지 않냐고 물었다. 그 정도는 아니라는 교수님의 말에 천진난만하게 "아 다행이다"라고 말하면서 생긋 웃는 듯한 표정이 초록색 칠을 한 내 심장에 푹하고 날아와 박혔다.
고통 앞에서 전혀 고통스럽지 않게, 괴로움 앞에서 괴로움을 숨기고 반대로 활기찬 표정을 짓는 것을 masking이라고 한다. 정신과적인 용어기보다는 살아가면서 익히는 사회적 기술에 가깝다. 슬픔 앞에서 사람들은 웃음을 짓고, 노래를 부르고, 문학은 그것을 이따금 해학이라고 풀이하고, 우리나라에서는 한의 정서 같은 와닿지 않는 말로 쓰기도 한다.
#3
중학생, 고등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뭐니뭐니해도 공부이다. 어린 환자들을 보면 그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들은 자신의 아픔 때문에 공부에 전념하지 못하는 것을,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죄스럽게 여기고 괴로워한다.
20대를 넘어선 나는 무조건적으로 꼭 공부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가졌다. 기술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과 가치탐색을 하는 것도 충분히 값지다고 말하는 편이었다. 나의 삶이 공부로 점철된 후회스러운 삶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 동기는 내가 말하는 그런 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배부른 투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고, 무척이나 낯이 뜨거워졌었다.
굉장히 날카로운 지적이었음에도 사람은 자신의 고통만을 생각하기에 급급한가보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서 어느새 '공부는 그리 중요한 가치가 아냐.' 라고 또 은연중에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것을 보니 말이다.
학생들에게 학업은 거의 절대적인 가치에 해당했다. 나도 그런 시기를 보냈으면서 너무나 쉽게 잊고, 너무나 쉽게 타인의 가치를 깎아내렸다. 빛깔 좋은 가치탐색 혹은 자신만의 직업탐색과 같은 말로 나 스스로를 속였던 것에 불과했다. 내가 배움에서 후회를 얻었다고 한들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은 후회의 길이라는 보장은 없으니 말이다.
#4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기획전시로 준비한 예르미타시박물관전에 갔다왔다. 겨울궁전에 있는 박물관인데 유럽 3대 박물관 중에 하나라고 한다. 흠...루브르, 대영제국박물관과 더불어 3대일까? 솔직히 말하면 겨울궁전도, 예르미타시박물관이라는 이름도 나에게는 처음이었기에 낯설었다.
작품은 박물관에 있던 프랑스 작품들을 많이 가져왔고, 시기로는 르네상스 풍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인상파 풍까지의 작품들이었다. 구스타프 쿠르베의 그림이 좋았다. 죽어있는 말을 배경에 두고 삼킬 듯한 느낌의 숲이 꼭 말하지 않아도 '죽음이 언제나 우리의 곁에 있음을 상기하라'는 고대의 잠언처럼 느껴졌다. 신화나 성경을 소재로 한 그림들에는 이런 메세지가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긴 하지만 그걸 회화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세잔의 그림은 충격적으로 좋았다. 거울을 바라보는 느낌처럼 맑은 호수의 느낌이 와닿았다.
#5
나머지의 그림들은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중간에 여러번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가 유럽을 바라보는 창이었다.'는 표현이 있었고 마지막쯤에 가서는 라흐마니노프의 '종'이 배경음악으로 나왔다. 아사다 마오가 언제쯤인가의 쇼트에서 썼던 음악으로 기억하는데 여기서 종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종'을 의미한다.
페테르부르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레닌그라드로,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4번이나 이름이 바뀌었던 변혁의 도시였기 때문인지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근현대 시대에 받아들여야 했던 제정러시아의 앞날이 느껴지는 것 같다. 어두운 새벽의 다가오는 변혁은 설레기보다는 두렵고 겁나기 마련이다.
#6
사람의 기억은 대단히 왜곡되고 자의적인 해석을 가지게 된다.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2번에 붙은 별칭은 사실 페테르부르크의 종이 아니라 '모스크바의 종'이라는 것을 방금 찾아보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지껏 러시아가 바라본 창 밖에서부터 찾아오는 변혁의 바람을 생각하면서 곡의 제목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순전히 그것이 더 낭만적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얼어붙은 동토의 땅에서 부동항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오던 시기의 나라, 황제를 끌어내려 뒤엎으며 새롭게 몰려드는 자본주의의 바람을 맞이한 러시아, 새빨갛게 물들어가는 공산주의 혁명의 울부짖음을 온몸으로 받아야 했던 레닌그라드의 종.
#7
아직도 나는 집 안에서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는 상상을 이따금 한다. 그럼에도 타인의 집 안에서 그들이 느낄 감정, 창밖에서 다가오는 변화의 세상이 그네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시린 감정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도 언제까지나 그들에게 있어서는 창 밖에 인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마음의 창을 열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