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 밤을 문 뱀
#1
본과3학년이 된 다음 나는 부쩍 아무런 일이 없이 본가에 내려가지 않고 육첩방을 뒹구는 날이면 아침일찍부터 초조함에 이불 속을 뒤척이곤 한다. 나의 시간이 아낌없이 티브이 속의 쇼처럼 허비되는 것이 아깝기 그지없다.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면 나는 구도자 K군을 불러서 허영심과 센티멘탈리즘에 빠져 저기 번화가에 나가 아-점을 먹고 오거나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노닐곤 했다. 요즘말로 갬성이라고 한다고 동생이 킥킥거리면서 알려줬다.
여러명의 K군이 나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지만 그게 무슨상관인가. 어쨌든 K군이 성찰의 회랑 앞에서 혼자의 시간을 필요로 할 때, 나 또한 혼자의 주말을 보내는 일도 많다. 그럴때면 나는 으레 서울의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겨 지하철을 환승하여 가곤한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술에 절어 흔들거리는 말 안장에 앉아있으면 노상 도착하는 곳은 광화문, 종로, 안국역의 일대인 것이다. 나는 이상하리만큼 종로를 좋아한다.
일찍이 인턴을 했던 회사의 대리님이 그런말을 하기는 했었다. 종로라는 동네는 신구가 조화되어 있는 곳이라고. 정녕 그러하다. 세종대왕의 어진 손과 충무공의 위엄있는 칼자루가 그러하고, 할아버지들의 스피커를 터져나오는 애국가와 태극기가 그러하고, 줄지어 매듭지어진 노스텔지어의 노란색 리본이 그러하다.
#2
어쨌든, 보지도 않을 서점을 슥 둘러보고는 미술관으로 발을 옮겼다. 시립미술관은 행사가 없을 때에는 대단히 한적한 곳이다. 짜리몽땅하게 찌그러진 동상들과 어둑해지면 누군가를 놀라게 하기 좋을 숲 속을 지나서, 미술관으로. 흰 벽들이 가득한 미술관은 한적했고 의자에는 누워서 햇볕을 즐기는 사람만이 오후를 늘어트리고 있었다.
나는 천경자라는 화가를 그리 잘 알지 못한다. 한 때, 그림이 로비의 세탁에 쓰였었다는 기사를 읽었거나 혹은 모조품으로 논란을 빚었거나 했던 신문 나부랭이를 읽었던 기억 혹은 그런 내용을 어머니가 이야기 해주셨던 것 같은 데자뷰만 허여멀건하게 젯소칠 되어있는 화가. 어쨌거나 나에게 있어서 그림은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대체로 도움이 되긴 하지만 때로는 그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림을 방해하기도 한다.
백야라는 그림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부엉이인지 올빼미인지 혹은 소쩍새인지 이름모를 새들이 모여서 밤을 하얗게 뜬 눈으로 지새워 걷어내는 것 같았다. 왜 그런 노래도 있지 않는가. 제주도 푸른 밤 하면서 시작하는. 파란 밤은 무척 낭만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 여름방학이 생각나서 상처처럼 마음이 쓰라렸다.
#3
압권은 <내 슬픈 전설의 22 페이지>였다. 천경자 아주머니는 뱀을 즐겨 그렸던 사람으로도 유명한데, 그녀의 뱀 그림이 정말 기막히게도 묘한 흡입력이 있었다. 사람들을 보통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그리려고하지 추오한 것들을 그리려고 하지는 않는다. 탐미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나도 뱀 그림을 보았으면 상당히 기분나뻐했어야 마땅한데 어째서인지 그녀의 뱀은 묘한 마력이 있었다.
어쩌면 뱀이란 그래서 인류 시초의 성경부터 사람을 홀리고, 빠져들게 하는 묘한 동물이었는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다리도 없는 동물이 온몸으로 기어가는 모습을 보면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한 엉뚱한 동생의 이야기도 생각난다. (그 동생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사는지?)
확실히 천경자는 인간의 원죄, 원초적인 모습, 보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로 바꾸면 태초의 인간에 대해 고민했던 것이 분명하다. 자신을 통해서 거꾸로 태초의 인간을 돌아보려는 시도를 했을 수도 있다. 그녀는 뱀을 그렸고, 몇 번쯤 무화과 나무와 '이브'를 그리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다만 선악과의 이브와 에덴의 뱀은 그녀의 생전에 완성되지 못했다.
#4
나는 그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완성했다면 불후의 명작으로 남았을텐데. 그래서 분명히 남겨진 그림중에 이브와 뱀에 대한 인상이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끝내주는군.
#5
명절동안 집에서 음악을 켜놓고 집안일을 하는데 동생이 나에게 너무 인디감성(갬-성)이 강하다고 했다. 그러게. 나도 알고 있지만 참 이 나이가 들었음에도 어찌 되지 않는 비주류적인 마음가짐이 아직도 한 구석 나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있어보이는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적인 기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는 하지만 의도와는 상관없이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게 듣는다. 그러고보니 나는 용 꼬리와 뱀 머리라는 단어를 퍽 즐겨하기 때문에 뱀과 용 두 동물을 모두 사랑한다. 나의 출생이 그 중간에 애매하게 걸려있는 것도 그렇고.
#6
얼마전 교수님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어서 열심히하는 좋은 덕목을 가졌지만 단지 덕목에 불과하기 때문에 머리도, 꼬리도 되지 못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더니 굳이 머리로 살 필요는 없다고 당신이 그렇게 살아보니 너무 피곤하고 지치더라는 말을 하셨다. 늘 중간이 목소리도 크고 묻어가기도 편하다면서 충분히 중간도 가치있다는 얘기를 하셨다.
내가 그렇게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말투로 용의 꼬리도, 뱀의 머리도 되지 못한다고 말했나?
표현이 퍽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