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의속삭임

본과 4학년 1학기 신경과2 : 실신2

펜에게서 자판에게 2019. 2. 9. 15:58



#1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꼭 실신하곤 한다. 이번 실신은 부끄럽게도 수업의 한 가운데였고 아이러니하게도 강의를 해주신 교수님의 전공이 뇌전증이셨다. 뇌전증은 간질이라는 말로 일반 대중들에게는 더 잘 알려져있는데 뇌전증과 구별해 주어야 할 질환 가운데 대표적으로 실신이 있다. 


강의실은 조금 더웠고, 지난 밤의 수면부족으로 몸이 쳐졌다. 강의에 앞서 아무런 준비도 해오지 못했던 나는 바짝 쫄아서 있는대로 긴장했고 핑하고 전조증상이라고 부르는 어지러움이 찾아왔다. 체액량을 늘리기 위해 물을 마셨지만 어리석은 일이었다. 위장관계를 통해서 흡수된 물이 체액량 증가로 이어지는 시간은 그렇게 빠르지도 않거니와 고작 몇 모금으로는 아무런 효과도 없을 것이었다. 


한쪽 다리를 무릎 위로 올리고 혈압을 올리는 자세를 취해보려고 했지만 책상이 낮아 어려웠다. 


48세 남자, 3번의 발작 이력이 있는... 뇌전증의 정의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니? 


교수님의 다음 질문이 날아들었고 나는 이지선다에서 무턱대고 한쪽으로 답을 찍었다. 이유를 묻는 교수님의 질문이 이어지면서 짧게 의식이 날아갔다. 



#2


여지껏 몇 번이나 실신을 겪어왔지만 나는 그것이 Loss of consciousness (LOC) 라고 부르는 의식소실이라는 것도 이번에 돌이켜 처음 알았다. 워낙에 짧은 기억의 빈 틈이었기 때문에 어지러워서 앞이 안보였을 뿐이라고 줄곧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키가 몇인지 물어보는 교수님의 질문과 식은땀이 흐르는 나를 걱정하는 동기들의 말소리가 가까이서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고 동기의 부축을 받아 수업을 빼먹고 오전을 쉬었다. 교수님의 호의로 뇌전증이 아닌 것을 확인하기 위해 몇 가지의 검사를 받기 위해 누워있는 동안 나는 처음으로 차분하게 지금까지 있어왔던 나의 실신 과거력을 꼼꼼하게 훑어보았다. 


부교감신경의 과활성 혹은 교감신경의 흥분부족이 원인이겠지만 상황을 일으킨 유발요인이 너무나 다양했다. (식당에서 엄청나게 매운 고추를 빈 속에 먹고 실신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주변사람들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뒤로 하고 멀쩡해진 다음에 나는 어김없이 부끄러웠다. 주변의 걱정하는 소리, 시끌벅적하게 숟가락을 떠올리는 식당의 떨그럭거림과 음식냄새들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얼굴 위로 번지면 부끄러워서 그대로 눈을 감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가게의 인상 좋아보이는 아주머니께서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을 때는 더욱더. 



#3


캄캄하고 어둑한 방 안에 누워 검사를 받는동안 수련에 대한 두려움, 의학에 대한 두려움이 차례차례 나를 방문했다. 실신으로 돌이켜보면 나는 걸핏하면 쓰러지기 쉬운 체질이었으며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압박에 대한 역치도 매우 낮아 상처 받기 쉬웠다.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나는 유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내가 나를 병상 앞에 던져서 수련을?


날카로운 교수님의 질문에 당황했던 것도 생각났다. 나는 1을 7로 부풀려 말하는 사람, 허풍쟁이다. 상황을 꿰뚫어보는 눈이 없거나 미숙한 사람들 앞에서 내 허풍은 대단히 잘 먹혀들었다. 거짓말쟁이들이 그렇듯 허풍선이 기질도 나를 좀먹으면서 더 커져갔다. 하지만 언제나 세상에는 상대방을 꿰뚫어보는 10의 능력을 가진 진짜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진짜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나의 밑천을 바닥까지 드러내 보이면서 볼썽사납게 혼나곤 했다. 


용꼬리도 뱀머리도 되지 못하는 인간. 그게 나였다. 



#4


실신의 가장 큰 후유증은 두통이었다. 보통의 편두통이 머리의 피질, 그러니까 겉 껍질 쪽에서 느껴지는 찌릿찌릿한 아픔이라면 실신 후의 두통은 깊은 속뇌쪽에서 느껴진다. 저산소증에 대한 스트레스 반응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머리 깊은 곳에서 울리는 통증은 역겨웠다. 그것이 나의 분신인 마냥. 


실신이 아닌 진짜 뇌전증을 앓고 있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떠올랐다. 자신의 생을 힘껏 끌어안고 늪 속에 가라앉았다가 다시 올라와 글을 썼던 사내. 매 문장 하나하나를 자신의 무덤 앞에 바치는 진혼곡처럼 눌러 담아서 적어냈던 진짜였던 사람. 



#5


토머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를 읽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찌질한 예술애호가, 딜레당트에 대한 고민은 무척 오래된 소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향과 외향의 고민일 수도 있고 요즘말로치면 인싸와 아싸스러운 관계일 수도 있다. 


아싸스러운 기질을 가진 사람들도 사회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성공한 아싸가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을 이루고 의미있는 존재가 되더라도 그는 인싸들의 삶을 여전히 동경하고 부러워하고 그네들은 결코 그를 이해하려들지 않을 것이다. 아니지. 아예 관심조차 없을 것이다. 토니오 크뢰거가 가져다주는 눈부신 팩트폭력은 그런 내용이었다. 


소설은 특별한 사건이랄 것도 없는 밋밋하고 서정적이기 그지없는 글이었지만 그럼에도 무척 마음에 들어 소장하고 싶어졌다. 나의 한계를 모래밭에 나뭇가지로 빙둘러서 그려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6


1주일에 걸쳐서 폭음을 두 번이나 했다. 한번은 무척 친한 동기들과, 한번은 동아리 내의 졸업생 송별회의 형식으로. 하루는 취한 뒤에 기분 좋은 상태가 되어서 흥얼거리는 밤을 맞이했고 다른 하루는 몇 번의 구토, 깨질듯한 두통, 으슬거리는 술병과 마주해야 했던 고독한 밤의 계속이었다. 


따뜻한 콩나물 국밥이 저절로 생각나는 오후였다. 명절연휴가 들어있던 일주일은 제법 다사다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