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4학년 1학기 여름방학 : 인상주의2
#1
마지막 모의환자 시험을 끝으로 4학년 1학기의 정규과정이 끝이 났다. 지난 시험을 만회하기 위함이었을까. 나는 괜찮은 인상을 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준비를 했다. 같은조의 C군이 보자마자 "신경 좀 썼네?"하고 반색했다. 이전까지는 적당히 깔끔하고 전문적인 인상을 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마치 소개팅에 나가는 사람처럼 하고 나갔다. 아무렴. 연기자들도 우리를 만나 연기를 하는 것인데 나도 연기를 해주리라.
나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아온 사람인 동생마저 내가 가면을 쓴 채 말하는 '안녕하세요'부터 평소와 너무 달라 웃긴다고 늘 말하곤 한다.
#2
시험기간 틈틈이 책을 읽었다. 공부를 길게 이어나가는 것이 지겹기도 했고 나의 독서습관이 자리에 앉자마자 몇 십 분, 집에 들어와 몇 십 분과 같은 식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칸칸이 벽이 쳐진 국가고시준비실에 앉아서 처음에는 동기들의 눈치를 조금 보다가, 나중에는 한시름 쉴 때에 옥상에 올라가 드러누워 팔랑팔랑 책을 읽었다.
나의 글을 포함해 대부분의 소설가들의 글은 '반복과 변주'에 가깝다. 음악으로 치면 비슷한 구성의 틀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셈이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펜이라는 거대한 나무가 뿌리내리고 있는 토양이 너무도 빈약하기 때문이라고 비관적으로 생각한 적도 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들도 이 책에서 풀어낸 글의 한 꼭지를 다른 이야기 속에서 다시금 변주한다.
#3
소설가 김훈은 인라인 스케이트에 대단한 인상을 받았던 것이 분명하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지치면서 땅을 밀어내어 나가는 동작을 대단히 세밀하게 묘사하고 다른 글에서도 또 묘사하고, 부러워하며 새의 날갯짓을 떠올린다. 비슷하게 그의 소설 현의노래에서 정점을 이루지만, 그는 악기에 대한 인상도 가지고 있다.
나의 인상은 아이들의 순수에 있다. 음악을 들으면서 아무런 박자도 리듬도 없이 그저 몸을 선율에 맡기며 열심히 흔들고 뛰는 갓난아이의 몸짓을 보면서 나는 황홀감을 느낀다. 아이들이 내뱉는 말과 행동은 아무 티없는 흰 도화지 위에 펼쳐지는 그림 같지만 그 안에 때로는 종이의 앞장과 뒷장이 하나의 세계에 불과하다는 통찰이 들어있기도 하다.
다른 글쟁이들과 마찬가지도 나도 언어와 언어 바깥에도 인상을 가지고 있다. 나는 글로 써지는 활자를 녹여내어 그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아이들처럼 쥐고 맛보고 가지고 놀고 싶다. 어쩌면 그것들은 글자 안에 애초부터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형태가 없는 몸짓을 나는 언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4
아이들을 생각하니 문뜩 섬진강 선생님 김용택이 떠올랐다. 영희야 철수야 학교가자 하는 식의 글과 정글짐에 거꾸로 매달린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도 아이들의 꼬물거림에 인상을 두었음이 분명하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어여삐여기는 것이 이미 어른의 시선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은 또래의 행동을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지 않는다. 흙운동장을 달음박질해 지구의 땅덩어리를 한 발 뛰기로 밀어낼 때, 아이들은 순수나 종잇장 따위에 신경을 쓸 여유도 없다.
#5
사진에 다시 한 번 손가락을 붙여보기 위해서 책들을 몇 권 빌렸다. 이론적인 부분보다는 사진이 보기좋게 큼직하게 나오면서 초심자가 알기 쉽게 읽을만한 책들을 뽑았는데, 고르다가 도서관의 한 구석에서 김영갑 아저씨를 마주했다.
내 어린시절, 말년의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제주의 한 구석 초등학교에서 그는 힘겹게 자신의 갤러리를 둘러보고 있었고 당시에 나는 그가 김영갑이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진의 주인인지 제주 중간산의 바람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고 지나쳤다. 당시에 내가 갔던 제주도 캠프도 그랬다. 나의 삶에서 한 번의 지나치는 경험일 것임에 틀림없었다.
#6
종종 소낙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나는 쏟아지는 비에 몸을 맡기고 솨아아 소리에 잠겨 샤워를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리고 늘 이런 상상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카프카의 숲에서 받은 인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영갑 아저씨의 사진으로부터 꼬리를 문 일화기억들이 떠올랐다.
따가운 여름 햇살 사이로 지나가는 소나기가 세차게 쏟아지던 제주도의 한 낮. 어느 초등학교를 지나는 1차선 도로에서 우리는 신발도 샌들도 벗고 비를 홀딱 맞아가면서 한 발 뛰기를 했다. 길은 빗물로 불어터져 버스 한 대, 개미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않았고 그날 먹었던 조개초국은 시원하고 달았다. 비가 걷히고 햇볕이 내리쬐면 옷을 햇살에 말리며 따듯해지는 콘크리트 위를 꼼지락거리면서 걸어나갔고, 길 없는 오름을 힘겹게 올라 그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훌쩍거리면서 들이마셨다.
마지막 날의 한밤에 촛불을 플라스틱 컵으로 감싸붙이고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중학생시절이었음에도 어찌나 말을 잘하고 생각깊은 친구들이 많았던지. 환경운동가로, 사회활동가로 달려나간 친구들이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내가 마지막의 밤에 했던 말은 기억도 남지 않은 멋없는 말이었겠지만 나는 안다. 그 때의 촛불이 봄이 오지 않아 자판을 움직일 뿐인 나의 정원에 들어온 하나의 불씨임을. 그때의 제주가 어제를 살아가는 나에게 미래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던 인상이었음을.
#7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경험이 몇 가지 있었다. 앞으로의 경험들이 나의 삶에 계속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끊임없는 외력으로 관성을 이겨내고, 안경을 벗고싶다. 그리하여 나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삶을 살고 싶다.
역행일기를 되새김질 하는 사람의 읽기로 그때 보았던 제주를 다시 찾아가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