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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몇 번인가의 시험이 끝났고, 시험기간 중에 동기와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다. 본과생활중에 처음 마주한 직언이었기에 놀랐고, 알고 있었던 부분들을 찔렸음에도 무척이나 괴로웠다. 타인에게 있어 내가 했던 이야기는 늘 씻어내지 못한 과오, 열등감, 좌절의 것들 뿐이었으니 어쩌지 못하는 나약한 룸펜의 의지박약한 이야기가 몹시도 거슬렸으리라. 나는 나보다 나이가 어림에도 그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정념, 젖은 나뭇잎을 태워버릴 듯한 불꽃, 고고한 기개가 몹시도 부러웠다. 당겨진 불씨는 내 마음근처까지 날아와 명멸하면서 저물어갔다.
나는 지겨움에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이끌고 본가로 돌아왔다.
#2
밥을 먹던 도중 다른 동기가 자신은 앞만 바라보는 직선인생이라면서, 내일만 바라보며 미래지향적으로 산다는 이야기를 했다. 무척 감복했다. 나는 정확하게 그와 반대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늘 어제를 향해, 지나간 나의 삶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말다툼의 중간에 retrograde한게 내 본질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비겁하게 상황을 모면했고 돌계단을 걸어올라가면서 다시 한숨이 나왔다.
영화 박하사탕의 오프닝이었는지 엔딩이었는지 혹은 둘 모두에서였는지, 기차가 철길을 따라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다소 기억이 부정확 할 수 있지만,기차는 선로를 바르게 주행하지 않고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그 기차 안에 앉아 있는 상상을 했다. 눈은 뒤를 향해 있지만 몸의 흐름은, 걸음은, 시간의 절대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박하사탕을 찍고난 설경구가 너무 힘들었어서 다시는 영화를 찍고 싶지 않았다고 했었나, 정말 죽고 싶을 정도라고 했었나 말했던 인터뷰가 기억났다.
#3
끼이이익하는 긴 마찰음으로 기차를 멈춰 세우고 문을 열고 아무런 역도 개찰구도 없는 자갈돌이 깔린 신호기 앞에 내려서서 뒤를 향해서 걸어가본다. 역행적인 인생의 씨앗은 이미 초등학교 1학년, 어쩌면 그보다도 더 전부터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기억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까지는 아니겠지만 드문드문한 기억을 떠올리기조차 쉽지 않은 시절.
의무감 때문이었나 포도알 스티커 때문이었나 혹은 부모님이 사주시는 간식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림일기를 그렸다. '차돌'이라는 주제로 일기를 썼던 것이 기억난다. 맛있었다. 좋았다. 내일 또 해야지.로 연결되는 삼연속 아동감탄사가 아니었던, 채우기 어려웠던 그림일기의 글자 칸을 빠듯할 정도로 가득 채웠던 일기였다. 거의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여느때처럼 뛰어놀다가 반으로 갈라진 돌멩이를 주웠는데, 돌맹이의 속은 겉과 다르게 너무나 반짝거리는 보석과도 같은 투명한 조각들로 채워져 있었다.
금색, 은색 크레파스를 써서 열심히 '차돌'이라고 푯말까지 달아놓은 그림을 그렸었다.
#4
국민학교의 현판이 떨어지고 초등학교로 바뀌던 시절, 누구나처럼 나도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로 일기를 썼다. 부모님의 치맛바람이 거센 지역이었기 때문이기 때문일수도 있고 잘난척하고 싶어하는 여전한 허세 때문일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1학년임에도 아닌 4-6학년 일기장에 일기를 썼다. 당시에는 초등1-3학년의 일기장과 4-6학년의 일기장은 칸수부터 달랐다. 나는 긴 칸을 채워가며 일기를 썼고 겨울방학이 오면 눈내려 잠긴 학교 문을 폴짝 넘어서 발자국을 찍어가며 시인이셨던 선생님이 개설했던 글쓰기 방과 후 교실에 다녔다. 배쑥쑥 등살살. 선생님의 시가 아직도 기억난다. 3학년 혹은 4학년 쯤에는 말도 안되게 두꺼운, 요즘으로 치면 천원정도 하는 공책의 두께정도 되는 일기장을 학교에서 상으로 받았다.
그 일기부터는 지금도 가지고 있다.
#5
중학생 시절, 나에 대해 생각하고 괴로움에 대해 생각하고, 부모님에게 반항하고 삐딱선을 타기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소 불량스러워 보이려는 노력도 해봤던 시절. 분노와 좌절로 몇 번이나 찢고 구기박지르고 내던졌던 일기장. 이때쯤 나는 시를 썼다. 중학생이 시라니 퍽 우습지만 국어시간에 운율이나 삼행시 같은 것을 곧잘 지어서 늘 가점과 감점으로 우리를 평가하던 국어 선생님이 제법이라고 칭찬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어처구니 없는데, 중학생 시절의 나는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이 변사또 앞에서 읊는 시조도 알았다.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로 시작해서 운자를 맞추는 시를 일기장에 적는 행동은 중학생이 했다기엔 꽤 뒤틀려있었다. 교과서에 실렸던 문학을 특별하게 좋아하진 않았다. 지금은 조금 구하기 힘든, 작가들의 다소 정제가 덜 된 글, 혹은 박완서 아줌마의 짧은 수필들(그때는 정말 박완서 아주머니에 가까운 연배셨는데)을 차가운 베란다에 있는 소파에 누워 읽으며 나는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글자를 썼다 지웠다 하곤 했다.
#6
고등학생 시절의 일기는 나의 시간역행 속에서 보면 이전까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형태를 찾아 정수를 이룬 시기였다. 미지의 존재가 이름을 얻어 '꽃'이 되는 인식의 시기와도 같았다. 나는 태산북두와도 같은 스승들을 만났고 임자있는 활자들을 하나씩 훔쳐와 풋익은 초록빛 대줄기에 몰래몰래 새겨나갔다. 돌이켜보면 그들이 한명도 빼놓지 않고 어찌나 센티멘탈했든지! 혹은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유독 더 끌렸음에 틀림이 없다. 언어영역을 풀다가 시에, 소설에 감응해 눈물이 나오는 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그것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두꺼운 공책을 하루에 반페이지씩 꼬박꼬박 채워넣는 일이 즐거웠고, 때로는 지겨웠지만 그 지겨움을 이유없이 의무감처럼 꾸역꾸역 넘겨나갔고, 내가 썼던 모든 글들을 읽고, 조아리고, 짜넣으며 오밀조밀하게 칸을 채워나갔다. 고2병적인 망상에 다소 심취하기도 해서 그런 것들을 아주 가끔씩 적기도 했었지만, 해리포터적인 망상으로 일기장에 소설을 적었던건 초등학생 시절이었으니 따지고보면 나의 모든 망상은 초2병에 뿌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혹시나하는 걱정은 역시나. 일기장과 나에 조금씩 얽매여 살았던 시절답게 나는 대입에 실패해 한 번의 수험길에 다시 올랐다.
#7
나의 인생을 시간역행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성격은 다분히 관성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수험이라는 당면한 과제가 주어지고 채찍질하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나는 부지런히 공부한다. 이유를 불문하고, 불만을 함구하고, 관성의 힘으로. 정확하게 그 한계를 알고 있는 지금의 시간 단위로 6개월 정도라면 균열없이 나를 굴려 올릴 수 있다. 그 뒤의 반발력을 억누르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지만 말이다.
꼭 이맘때쯤. 추석 명절이 연휴로 다가왔던 시기에 나는 떨어지는 돌덩이처럼 친구들과 게임을 하러 쏘다니거나, 배팅장에서 야구공을 치거나, 홀로 63빌딩의 전망대에 오르고 아쿠아리움에 가서 전자수첩에 글을 적곤 했다. 펜의 날카로움과 자판의 투박함 사이에서 나는 자유로웠고 내가 써내려간 활자들을 전망대에 비친 서울의 야경처럼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돌이켜보면 이때쯤 알아차려야 했다. 적어나가는 것보다 적은 것을 다시 삼키는 것이 훨씬 더 괴로운 일이었음을 말이다.
#8
대학교의 번잡한 모임속에서 벗어나 훈련소로 떠났을 때, 비로소 나는 이기적이고 나약한 나의 모습과 마주했다. 나는 너무도 깨지기 쉬운 연약하고 어리석은 껍데기에 불과했고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스트레스는 나를 궁지로 몰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나의 본질이 펜에 붙어 있음을, 종이에 씌웠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두꺼운 편선지 위에 하루 종일 있었던 일과 떠오르는 모든 것들을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언어로 적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라는 온점과 함께 찍어 보냈다. 생활관 동기들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 편지를 쓰는 나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수 십통의 편지가 갔을 즈음. 동생에게 답장이 왔다. 편지 좀 적당히 보내.
행군을 하는 동안 나는 머릿속에서 단 한번도 나의 일기장을 닫아본 적이 없다. 앞 사람조차 보이지 않던 안개 속을 패잔병처럼 해메며 적었던 문장, 미지의 전장을 파고들면서 코를 간질였던 딸기의 달콤한 향기. 그 미로같았던 문장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기에 나는 스스로를 적어나가며 감탄하고, 되돌이키고, 곱씹으면서 뒷걸음질쳤다.
#9
그리하여, 나는 나의 매 걸음마다 나의 인생을 활자로 완성해 찍어내며 걷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고작 삼십이 되지도 않은 나이에 불과하건만 나는 살아온 기억을 글로 정리하여 그것을 수십 번, 수백 번이나 읽어보았다. 활자에 인간들의 시간을 동등하게 부여할수만 있다면, 지나간 일기를 한번 읽어나갈 때마다 나는 나의 인생을 한번씩 역행했던 셈이다. 몇 년, 몇 십 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일기 속에서 흘러갔다.
나는 내 안에 사로잡혔으며 동시에 내 안에서 노쇠했다.
가장 마지막의 일기장을 덮었을 때 유리창에 비친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청년의 것이 아니었다. 하얗게 세어버린 마음으로 파삭해진 일기장을 안고 첨탑의 꼭대기에서 활자의 주인은 끊임없는 눈물을 흘렸다.
#10
기억해 내려 충분히 노력만 한다면, 사람은 그가 살아온 인생 전부를 다시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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