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에 적혀진 글을 통해 돌아보았다. 1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속절없이 흘러갔건만, 왜 나의 하루하루와 당직한번은 그다지도 길고 힘겹게 느껴지는 것을까? #2 2년차의 끝이 다가왔다. 일년간 많은 일이 있었던가? 기억은 상당히 흐릿해져서 뭉개져서 커다란 달력의 숫자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 같다. 2년차가 되어서 흔히 말하는 펑션이 오르고, 하지만 거기서 그다지 큰 진전은 없고, 해야할 공부는 한 없이 많아 눈 앞에 보이는데 손을 가져다 대지 못하고 늘어져버리고 환자를 보고, 보호자를 면담하고, 교수님을 보조하고. 겨울은 수련을 받는 의사들에게 있어서 대체로 힘든시기이다. 전문의 자격시험을 앞둔 최고년차들이 시험준비로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전공의 가운데에서 가장 날카로..
#1 중간과정을 죄다 날려먹고 다시 호흡기로 돌아왔다. 신장내과나 혈액종양내과처럼 저년차들이 맡지 않는 과도 어찌어찌 회복되어가는 몸을 이끌고 돌았는데, 잘 해냈기보다는 무던하게 묻어갔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배움의 시간을 허송세월했던 것 같아 죄책감이 조금 들기도 한다. 학생시절 학업의 팍팍함에 나아가지 못해도 시간과 전공이 나를 다 스쳐서 지나갈때까지 버티고 서있자라는 마인드가 강했는데 어째 전공의 시절에도 내심 같은 마음으로 살 때가 있는 것 같아 서글플 때가 있다. 인간세상의 원동력은 그러한 상황에서 내딛는 한걸음인 것을 알면서도 내심 그렇게 해내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비관이 차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올 한해 입원에 병가를 거치면서 적당함을 눈감아주는 마음도 생겼다. 의사로서 ..
#1 인생을 살다보면 몇 번쯤 변곡점이라고 부를만한 커다란 분기점이 나타나는데 이때의 내게 닥친 일이 꼭 그랬다. 매사 허약하기는 했어도 나름 버티고 참는 것 하나만은 자신있다고 생각해왔었는데, 몸의 악화는 단순하게 부러지지 않으려는 안간힘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크게 몸이 아퍼 입원하게 되었다. 내내 입원하는 환자의 기록지를 쓰고 들여다보고 수정하고, 작성하면서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다가 반대로 내가 누군가의 환자가 되어 입원하게 되니 느낌이 매우 이상했다. 가볍게 입원해서 조절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기에 응급실을 경유해서, 준중환자실을 경유해서 일반병실까지 침상에 안정을 취하면서 도달한 나날은 무척이나 꿈처럼 아롱거려왔다. 처치실에서 모니터를 달고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이 기억에 있음에도..
#1 떠올려보면 본과생 시절 나는 의학에 매몰되어 가는 스스로를 무척 싫어했던 것 같다.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거나 여유가 생긴 시간에 동기들이 학점, 공부, 진로 따위의 것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 그때는 그렇게도 피곤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K형과 죽이 잘 맞았고 우리는 의학 외적인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전문가가 되어간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깊은 땅굴을 파고 내려가는 것과도 같아서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넓이를 생각하기는 어려워진다. 수억년의 시간을 간직한 동굴의 종유석이 만들어질 때를 생각해보면 경이롭지 않을수가 없지만, 한편으로는 한가지에 탁마하는 인간의 노력이 몹시도 어리석어 보일 때도 있다. #2 사람의 성향을 넓고 얕게 익히는 것을 좋아하는 제네럴리스트와, 한분야에 천착해나가는 스페셜리스..
#1 내과 전공의를 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어간다는 것이었다. 때늦은 미비서류를 작성하다보면 사망한 환자의 차트를 열어보게 될 때가 있다. 정신없고 바쁜 1년차 초반이라 지나간 사람의 기억은 거의 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환자, 보호자들은 기억에 남는다. 무슨 질환으로 왔는지, 처치가 어땠는지는 기억에서 모두 사라지고 매일매일의 회진 속에서 검사결과는 수시로 잊어버리지만, 결국에 사람에 대한 기억과 인상만이 남아서 맴돈다. 내가 이때 더 잘했으면 환자의 예후가 달라졌을까? 혹시 나도모르게 놓친 것은 없었을까? 결과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를 보면 나는 역설적으로 의학의 허무함을 깨닫는다. 수많은 검사와 신체검진과 환자가 말하는 증상들이 우리 몸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하..
#1 호흡기내과는 내과인턴을 돌 때 걸렸던 분과이기도 했고, 죽이 잘 맞는 정군과 함께 하루 종일 입에 욕을 달았던 기억이 있는 과였다. 스테이션에 chest bottle을 만들면서 잘라낸 호스며 식염수들을 내 팽개치며 우리의 맘대로 스트레스를 발산했던 것들이 생각났다. 그만큼 미친 콜수와 정신나간 술기량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첫 내과턴이 호흡기라니! 당시에 우리 인턴들이 신환세트라고 부르는 것들이 있었다. 코로나검사처럼 코로 찌르는 nasal swab 호흡기 검사 + 소변검사, 소변배양검사 + 혈액배양검사 + 동맥혈채혈 + 심전도까지. 신환이 들어오면 바구니 한가득 술기봉다리가 쌓이는데 한명이 번개처럼 붙어서 해도 거의 2,30분 가깝게 소비된다. 문제는 이게 쌓이는 속도가 빠지는 속도보다 ..
#1 어째서 또 1분기를 건너뛰고 4분기로? 하고 의문을 품게 된다. 몇 번 글을 임시 저장하고 쓰고를 반복했는데 이전만큼 씹을만한 감성이 영 나오지 않아서 갱신을 하지 않고 미적거렸던 것이 어느새 1년이었다. 예술가에 비할바가 아니지만 창작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서랍 속에서 나오지 못한 원고, 악보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람의 인생을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여행과 같은 생생한 경험이거나 독서를 통한 몰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독서도, 여행도 올해는 영 미덥지 못했다. 코로나의 탓일 수도 있고 삶의 긴 과정 속에서 반쪽을 찾아가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로컬생활은 돌이켜보면 다시없을 만큼 여유로웠고 행복했다. 유대인들은 매 7년마다 안식년을 가지는데,..
#1 인턴에서 빠져나온 로컬의 생활은 생각보다 바쁘게 흘러갔다. 당직이 없어진 것에 안도를 하며 월수목금토 챗바퀴를 돌렸다. 의외로 로컬 병원의 근무시간은 9 to 6보다는 열악하기에 근무시간 대비 노동강도로치면 만만치가 않았다. 환자의 큰 뭉텅이를 차지하는 직장인들이 보통 근무시간에 병의원에 오기가 어려우니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 측에서 운영시간을 늘려놓는 수밖에.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이게 늦출근 늦퇴근을 만드는 셈이었는데, 저녁이 있는 삶이 여전히 먼발치에 놓인 무지개처럼 매혹적으로 보였다. 9 to 6의 근무시간을 앞으로, 혹은 뒤로 조정할 수 있다면 나는 어김없이 새벽6시부터 일해서 오후 3시에 퇴근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직장인 친구들은 뒤로 시간을 옮기는게 보통이며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