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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의속삭임

내과1년차 11월 호흡기내과 : 삶과 죽음5

펜에게서 자판에게 2023. 2. 18. 12:34

 

 

#1 

 

중간과정을 죄다 날려먹고 다시 호흡기로 돌아왔다. 신장내과나 혈액종양내과처럼 저년차들이 맡지 않는 과도 어찌어찌 회복되어가는 몸을 이끌고 돌았는데, 잘 해냈기보다는 무던하게 묻어갔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배움의 시간을 허송세월했던 것 같아 죄책감이 조금 들기도 한다.

 

학생시절 학업의 팍팍함에 나아가지 못해도 시간과 전공이 나를 다 스쳐서 지나갈때까지 버티고 서있자라는 마인드가 강했는데 어째 전공의 시절에도 내심 같은 마음으로 살 때가 있는 것 같아 서글플 때가 있다. 인간세상의 원동력은 그러한 상황에서 내딛는 한걸음인 것을 알면서도 내심 그렇게 해내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비관이 차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올 한해 입원에 병가를 거치면서 적당함을 눈감아주는 마음도 생겼다. 의사로서 썩 좋지 못한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내 삶이 능력에 비해 과한 노력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혹은 스스로 나이가 들고 있나보다 싶은 생각도 했다.

 

#2

 

하지만 어영부영한 마음으로 돌았던 마음가짐은 호흡기내과 첫날에 교수님에게 날아온 전화에 깨지면서 거품처럼 녹아내렸고 시시각각 변해가는 환자의 상태와 푸시에 나는 마음을 졸이고, 호들갑을 떨고 여기저기에 불리고 뛰어다니면서 빠르게 적응했다. 내과 전공의 멘탈에는 역시 호흡기담당 치료가 제격인가? 

 

그래도 나름 한번 돌았던 과라고 한두주쯤 지나자 환자파악이나 처치가 내 스스로도 매끄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예상한 처치의 방향이 교수님들의 계획과 맞아떨어질 때는 아주 순간적이긴 하지만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1년차 초중반때는 적당히 일이 손에 익으면서 아는 것은 없어서 처방을 내고 환자를 볼 때 별 걱정이 없었는데, 오히려 아는 것이 늘어나니 신경써야할 부분. 걱정해야할 것들. 미리 진단을 고민해보아야 하는 부분들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업무량이 늘어났다. 내과의사는 하는만큼 빡셀 수도 적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학생 때 들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나보네 하는 생각을 하며 혼자서 별거없는 칭찬과 추켜세움을 준다. 

 

 

#3

 

그래도 호흡기는 호흡기다. 우리는 우스개소리로 응급실로 온 환자는 호흡기내과가 종착지이며, 외래로 온 환자는 신장내과가 종착지라는 말을 한다. 병실과 중환자실을 오가면서 서서히 나빠지는 환자들의 경과를 보면 직감적으로 결과가 안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환자들이 악화완화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스러져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백가지 갈림길중에 한두가지의 길은 호전되어 퇴원하는 경우의 수가 있지 않았을까? 나의 처치, 혹은 교수님의 처치가 조금 더 미세하고 세밀하고 엄격하게 이루어져서 최적의 조절을 이루어냈다면 결과가 달라지는 내일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의 얄팍함에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의사들 중에도 세밀한 micro mange 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결국 대세에 영향은 없다는 말처럼 macro 하게 굵직굵직한 처치 위주로 해나가는 사람도 있다. 1년간의 짧은 내 경험으로는 전자나 후자나 예후에 큰 차이가 없어 보일때가 많았다. 그것이 또 삶과 죽음에 있어서 결국 커다란 흐름 자체를 작은 물장구로는 막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4

 

사랑하는 사람의 외조모가 상을 당하셨다. 평일 근무였지만 부랴부랴 연차가 가능한지 찾아보고 황망한 마음으로 지방으로 가는 차량에 몸을 실었다. 작년 말쯤 나의 외조모께서 임종하여 장례식장을 갔었는데 시험을 앞둔 직후였어서 조문을 하고 잠시 자리를 지켰다가 떠났던 것이 전부였던 것에 비해, 이번에는 먼 지방의 외딴 곳에 하루 반나절 정도에 걸쳐 문상객들을 맞이하고, 입관에 참여하며 장례식장에 머물렀다.

 

여지껏 나는 환자들의 임종선언을 하면서 죽음의 과정과 절차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턴시절부터 매일매일 술기를 하며 서서히 나빠져가는 임종직전의 환자상태를 보고, 담당의를 하면서는 임종선언과 그 뒤로 흰 포에 쌓여 운구되는 그 짧은 말미로 바라본 죽음의 인상이 내게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이번 장례를 통해서야 병원을 떠난 임종한 환자가 보호자들과 가족들의 품에서 어떻게 떠나가는지를 온전히 알게 되었다. 

 

가족들의 흐느낌이나 울음 속에서 떠나가는 사람을 보는 마음은 덤덤했고 잠깐동안 고인의 손 끝에 온기가 남아있지는 않을가 하는 마음으로 손을 가져다 대보았다. 

 

고인의 부재는 장례식이 아닌 한참의 일상을 보내던 아느 당직날 한 가운데서 텅 빈 마음이 떠오를 때 더 크게 느껴진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다는 것이 이렇게도 쓸쓸한 감정이었나? 인생 속에서 소중한 것들은 참으로 많고 의외로 단순한 것들인데. 생의 시간이 너무도 길어서, 더 정확하게는 짧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소중함을 잊고 지내지 않나 싶다  생의 끝자락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 누군가에게 따듯하게 대하고 사랑할 시간마저도 부족하지 않을까? 하기야, 그것을 쉽게 잊어버리고 작은 삶의 부분에 매달려 아웅다웅거리는 것이 사람의 지저분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5

 

몇 개월이나 글을 만지작 거리다가 겨우 올렸다. 일년차를 마무리하면서 떠올려보면 참 감정이 메마르고 팍팍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의학적인 깊이라도 생겼어야 하건만 요령과 짬만 찼을 뿐 어수룩한것은 예나지금이나 마찬가지같다. 오히려 조금 더 어수룩해지고 주변의 눈치를 보고, 아 저 일 못하는 녀석. 이라는 얘기를 듣게될까봐 노심초사하고. 환자가 갑작스럽게 안좋아질까봐, 응급한 상황들이 생길까봐 초조해 하는 마음만 더욱 커진 것 같다. 

 

일은 손에 익었가건만 오히려 일이 힘들다고 느껴지고, 마음이 답답해서 어디 토로해야 고민이 되고 잠깐이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라도 보아야하나 하는 생각들도 스쳐 지나간 적도 있다. 삶의 처음과 끝에서보면 찰나의 고민에 불과하지만 결국 그 안에서 나도 있는 힘껏 부딪치고 구르면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다가올 2년차의 시간을 걱정과 떨림으로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