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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의속삭임

본과 3학년 1학기 일반외과1 : 초록심장

펜에게서 자판에게 2018. 2. 26. 23:44


#1

'모모와 시간도둑'이라는 소설을 보면 이야기꾼 지지가 모모에게 들려주는 어제의 나라의 왕자와 오늘 나라의 공주의 이야기가 나온다.(반대일수도 있는데 하여튼) 그리고 거기에 보면 왕자와 공주의 사랑을 위협하는 초록심장의 마녀가 나온다. 흔한 동화속의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존재들에게 붙는 말이 파랗거나 초록색의 심장이다. 

실습을 돌면서 느낀 첫 번째가 의사는 초록심장을 가지지 않고서는 쉽사리 할 수 없는 직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2

응급으로 환자가 들어왔다. 환자는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오갔고, 의식도 수면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 멀쩡하게 올라왔다를 반복했던 것 같다. 한참이나 내 위에 있는 내과선배의사가 한잠도 못자고 내내 붙어 있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어보이는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할머님이셨고 옆에는 역시나 연고라고는 둘 곳이 없어보이는 할아버지가 맞은 편 간이 병상에 외투도 벗지 않고 앉아계셨다. 가족이나 다른 보호자가 없냐는 말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상태가 좋지 않으셔서...수술을 해도 가능성이 높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이대로 놓아두셔도 오래 살아계시긴 어려울 겁니다.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네요. 교수님은 마치 가벼운 수술을 받고 내일 퇴원할 환자에게 던지듯 평온하게 말했다. 

그냥 그럼 이대로 가는게 낫겠어. 의식이 돌아온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마치 뒷짐을 지고 툇마루를 나와 동네 마실을 나가듯 말하셨다. 

찰나의, 아주 짧은 침묵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나는 그 순간에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기 힘들었다. 


#3

갓 태어난 신생아를 수술실에서 보았다. 눈도 뜨지 못하고 울음소리도 내지 못한채, 아마 아이는 엄마의 젖보다 마취약을 먼저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탄생의 순간 자체도 감각으로 치면 고통에 가까울 것이지만, 나는 갓 태어나 장시간의 수술을 받은 아가의 고통은 출산과 비교도 할 수 없다고 상상하곤 몸서리쳤다. 험난한 수술이 계속되었고 마취의도 교수님도 원하는대로 수술이 쉽게 진행되지 않아 신경이 날카로워지셨다.(상식적으로도 당연하지만 어린 소아와 늙은 노인의 수술이 성인에 비해 난이도가 훨씬 높다)

그래도 무사히 수술이 끝나고 나서, 한 풀의 숨을 세상 밖으로 내쉬겠다고 올록볼록하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아기의 가슴을 보면서 나는 괴로웠다.


#4

내가 겪은 지난 일주일의 병원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너무 얇았고 하마터면 나를 잃어버릴 뻔 했다. 병원을 처음으로 겪으면 당연할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나는 의사의 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을 했다. 

나는 의사들이 이성을 신뢰하고 차거운 이미지로 환자를 대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다. 영화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패치아담스같은 웃음을 주고 울음을 주는 의사를 나는 좋아한다. 내가 그린 의사는 스승이기보다는 친구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다분히 대중적으로 그려진 의사의 꿈같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나는 이제 고작 실습을 일주일 겪은 애송이에 불과할 뿐이데 말이다. 


#5

응급의학을 보면 재난 상황이 오면 우선적으로 구조되고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1순위에 의료인이 들어있다. 이는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며 구조를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순위에 따라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의료인을 먼저 구하는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죽어가는 다른 사람을 후순위에 두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하는지, 한번쯤 고민해보라는 교수님의 이야기가 매 시간마다 이어졌다. 

그리고 나의 의전원 입시 때 이런 문제가 면접장에서 나왔다. 나는 나를 버려 환자를 구하겠다고 답했고, 보기 좋게 교수님들에게 반박당했다. 반론을 받아들이며 조금은 수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 면접의 기술이겠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은 나의 살아온 가치관이자 나 자기자신의 반영인 것을. 종국에 나는 대승적 선을 이루지 못하고 눈 앞에 있는 환자를 구할 정도의 사람밖에 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입밖에 내고 말았다.


#6

면접장에서도 꺾을 수 없었던 나의 가치관은 병원에 와서 우습게 부러질 것처럼 흔들거렸다. 인간의 선함 그 자체와 타인의 구원만을 생각해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고. 무엇인가를 이루기 전에 나를 잃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고. 나의 심장이 그렇게 속삭였다. 

어쩌면 그래서 의사도, 환자도 자신을 속여서 짐짓 담대한 척. 조금 눈을 찡그리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마음의 동요를 한구석 숨기고 침대로 몸을 이끌어 조용히 잠을 청하러 가는 것처럼 행동하는지도 모른다. 


#7

일주일간 내 실습을 지도해주셨던 교수님은 의사들의 번아웃신드롬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다. 병원은 사람이 살아나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스러져가는 곳이기도 하다. 존재의 명멸이 이루어지는 벼랑 끝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버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환자들의 상태가 안좋다며 한숨을 쉬고 걸어가는 교수님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스스로를 완전연소하다 못해 새카맣게 탄화시켜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8

의사가 되는 것이 두렵고 겁이난다. 나는 나를 잃고 싶지 않다. 껍데기를 한꺼풀 벗어나 밖으로 나가는 것은 언제나 두려움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한기처럼 파고들자 나는 몸을 끌어 안았다. 

그럼에도 인간은 본디 선한 존재이며 존중받아 마땅하고 가슴 아픈, 울어야 할 현실에서 크게 울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리를 올곧게 마주하고, 울음을 한바탕 쏟아내고 다시 걸어나가야 하는 존재라고 여전히 나는 믿는다. 두려움을 설렘으로 속여서라도 나는 태양을 바라보고 싶다. 태양을 바라보다가 두 눈이 멀어버릴지라도 나는 태양의 밝음을 새기고 싶다.

복잡한 감정들을 뜨거운 물로 한참이나 씻어내리곤 나도 육첩방의 비좁은 문을 열어 어두컴컴한 관짝과도 같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하루가 어두워져 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