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살이찐다.
살이 진짜로 숨풍숨풍찌고 있다. 숨풍숨풍이라는 표현은 밥만 풍풍 퍼먹고 숨만 숨숨 내쉬면서 살이 찐다는 의성어 같아서 조금 귀엽다. 역대로 살면서 가장 최고치 몸무게를 갱신해나가고 있다. 본과만세! 비결은 역시 먹고 앉아서 공부하고 다시 먹기. 으잉? 근데 그건 전에도 계속 해왔던건데. 무엇이 다른 것인지는 명확하게 모르겠다. 9시부터 6시까지 시간에 갇혀서 장시간 강의를 듣기 때문인지, 머리 독 위로 쏟아지는 방대한 지식의 양 때문인지, 공부와 시험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좋은 일이라면 좋은 일인데, 공부로 인해서 살이 빠졌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찌고 있어서 걱정이다. 사실 배에 복근...은 아니고 지방이 없어서 표면에 위치한 배곧은근이 보였는데(rectus abdominis라고 한다) 이게 사라져간다. 맙소사. 거미형 인간이 되는거 아닌가 걱정이 된다. 운동. 운동을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
어.....일단 먹고보자.
#2.
하루 중 밥먹는 시간이 가장 기쁘다. 그리고 밥을 다 먹고 식당을 나오면 하루 중 가장 슬프기도 하다. 다산선생께서 말하던 食은 입을 속이는 것이니. 하는 이야기는 이미 도롱이와 함께 내던져 버린지 오래다.
#3.
교내활동 중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하나 포기했다. 해볼걸 하는 후회가 남기에 분명 선택을 잘못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알고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가능하면 나도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즐거워 할 기회를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나 나는 오롯한 침대 안에서 토끼인형을 끌어안고 잠을 청하는 아이여야만 했다. 모두가 함께 걸어나가는 세상속에서 조금은 나만의 공간과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단체 생활이 체질이 아닌 것은 아닌데, 아니지. 체질이 아닌게 맞는 것 같다. 분명히 말하면 단체 속에서 나는 늘 가면을 쓴다. 누구나 그럴거라고 위안을 하긴 하지만 특히나 사회적인 나는 피로하다. 분명 혹자는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고 주장하겠지만 나는 잘 알 수가 없다. 가면이 나인가? 내가 가면인가?
즐겁지만 지친다. 휴식이 필요하다. 내향적인 사람을 사회가 조명해주는 것은 정말 좋다. 내가 이따금 친구의 연락을 죄다 삼켜버리고 지상으로 떨어져도 나의 '내적인 성격' 탓을 해버리면 되니 말이다.
#4.
골학과 관련된 발표 실습이 있었다. 각 조에서 임의로 몇 사람을 뽑아서 발표시키는 방식인데다가 첫번째 있는 발표였기 때문인지 다들 밥과 잠을 포기하고 준비를 하는 모습들을 벌써부터 보였다. 그리고 역시나 수많은 사람들의 발표를 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차이가 눈에 들어왔다. 내 경우는...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아쉽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발표하지 않았다.
이상만 놓고 본다면 아쉬웠다. 나는 남들 앞에 서서 흐트러짐 없이, 유려하게 현학을 뽐내는 것을 좋아한다.(해부실습때는 그렇게 해보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단체 속에서 가면을 쓰면 피로를 느낀다고 해놓고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니 극히 모순적이다. 나도 나의 모순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부모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특성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유년기부터 줄곧 부모님은 내가 남들 앞에 나가서 무언가를 훌륭하게 해내고 오면 '무대체질'이라는 칭찬을 늘 해주었으니까.
적어도 평균을 상회하는 언변을 가지고 있다고 자만했던 적은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그것이 운으로 얻은 몇 장의 카드패를 쥐고 펼치는 블러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5.
졸리다. 체력이 하루하루 떨어지는게 느껴져서 신기하다. 월요일은 멀쩡했지만 화요일은 오후수업부터 수요일은 오전부터. 그리고 주말쯤되니 종일 헤롱헤롱. 아. 나는 일주일에 한번 주말이면 꼭 주간지나 신문의 재미있어 보이는 면을 골라 읽는 망중한을 갖는데, 거기에 일기는 가장 좋은 셀프힐링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럼 나는 오늘의 다소 센티멘탈한 글은 나름 셀프 힐링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곰곰히 생각해본다면 나의 글조차 하나의 위장에 불과할런지도 모른다. 나 자신조차 속일 수 있는 그런 술수말이다.
'자판의속삭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본과1학년 6주차 : 밤길을 걷다 (0) | 2016.04.02 |
---|---|
본과1학년 6주차 : 육첩방六疊房은 타인의 방 (0) | 2016.04.01 |
본과1학년 2주차 (0) | 2016.03.06 |
본과1학년 1주차 (0) | 2016.02.28 |
본과1학년 1학기 0주차 : 골학을 마치며 (0) | 2016.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