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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의속삭임

본과를 마치며

펜에게서 자판에게 2020. 1. 21. 15:08

 

#1

4년이라는 시간은 지극히 짧은 시간이다. 나는 4년간 아무것도 해낸 것이 없다는 생각을 떨치기 위해서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의 촉이 되어 가르고 지나온 바람들을 생각한다.


#2

무난하게 국가고시를 통과했다. 끝까지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머리를 쥐어뜯던 그 박군도! 무사히 시험을 넘겼다. 수십 년 평생 잘못된 길을 밟아왔다고 주장하는 박군에게 의사면허는 아마 그 잘못된 길의 끝에서 얻는 보잘것없는 한 줌의 승리다. (혹은 그의 주위에서 박군을 밀고 끌었던 우리의 승리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제 사회로 나갈 그의 자유로움에 박수를.

국가고시를 치르고 난 며칠 뒤 터미널에서 둘이 만나 시험과 의학을 물고 뜯고 씹으면서 음료를 마셨다. 박군은 늘 라떼만 마시고 나는 늘 휘핑크림을 뺀 초콜릿만 마시며 냅킨과 빨대를 내가 준비해오면 그는 매번 휴지를 죄다 조아 뜯어놓는다. 인근에 종합병원이 있기 때문인지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대화도 병원 이야기였다. 동종업계 사람들이 있을 때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해야하는 것이 국룰아닐까 잠시 망설였지만. 역시나 박군은 박 군이었다. 거침없이 의학의 불완전성과 수련의 불합리함을 만천하에 떠들어댔다.

그래서 나도 아무렴 내가 눈치 볼 이유가 없지 싶어 신나게 떠들었는데, 돌아가는 길에 박군에게 슬쩍 옆자리도 선생님들 이야기를 하니 전혀 몰랐다고 뜨악하여 했다. 이런.


#3

동기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일전에 참석했던 선배의 결혼식장과 꼭 같은 장소였다. 오자마자 여기 식사가 어떤 식이었지 생각부터 했다. 사회생활에 잔뼈가 굵은 K형이 내게 알려준 혼주 인사-축의금-사진을 채우면 밥을 먹고 빠져도 된다는 결혼식의 대원칙은 여전히 유용했다. 사회성 떨어지는 겜돌이들의 표현같지만 어바웃타임에 나오는 결혼식 같은 모두의 축제 같은 결혼식을 한국 내에서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운이 좋아 동생이 이국의 결혼식에 참석할 자리가 있었는데, 정말 게임과 파티가 어우러진 즐거운 자리였다고 했었고 나는 땅을 치며 부러워했다. 타국의 여행도 좋은 경험일진대 하물며 결혼식이라니!

2년 전에 같은 식장에서 결혼한 남자 선배가 신부에게 전하는 말을 읽으면서 울다가 날뛰며 웃었던 귀여웠던 모습들이 이번에는 여자 동기가 조심스럽게 양 눈을 훔치는 눈물로 옮겨와 붙었다. 동기들의 결혼식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하객보다는 축의금 봉투로 대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동기들보다 더 많은 후배의 모습도 보였다. 2년의 세월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나는 음식들을 집었다.


#4

전공과와 인턴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할 시기가 왔다. 이제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정보를 취합하고 부모님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달라질 것은 없지만 머리를 쥐어짠다. 공부를 더 해둘 걸 그랬나? 하는 후회는 거의 들지 않는다. 여기가 나의 평균선이며 최선의 최선을 다했어도 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체념이 깔려있을 수도 있다.

다만 병원의 지원을 할 때 수능 때부터 느낀 눈치를 보고 원서를 쓰는 '지름질'의 떨림을 나는 썩 좋아하지 않는다. 유년기에 학습된 합리주의는 내 인생의 중대사를 요행에 맡기기보다는 조작 가능한 범위 내에 두고 싶어 한다.

어떤 전공과의 의사가 될 것인지보다는 나는 늘 어떤 의사가 될 것인지를 고민한다. 어느 병원의 브이로그를 찍는 전공의 선생님을 보았는데 흥미로워서 나의 얇은 귀가 또 팔랑거렸다. 아. 인터넷의 블로그나 유튜브에 나오는 떠오른 선생님들은 대다수가 성적이 좋다. 아니 어째서? 나는 의문이 든다. 이것저것 다 잘하는 사람들이 정말 모든 걸 잘하는 법일까?

아무튼 합리주의도 해체주의도 아니지만, 그 중간쯤 표현과 인상에서 길을 생각해두는 것이 좋겠다. 스팅의 shape of my heart가 역시 명곡은 명곡인가봐.


#5

미식가 박군과의 저녁이 있었다. 오래된 치킨집에 가서 기름향을 서로의 코트와 정장에 잔뜩 묻히고 각자의 집으로 휘청거리면서 향했고 기업의 인턴 생활과 구두에 멍든 박군의 오른발이 겨울철 공사가 한창인 지하철로길 위로 절뚝거렸다.

나는 미각에 대해서도 막입이라고 칭하고 있었지만 파고들어 보니 제법 날카롭다는 것을 파고들면서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다산선생의 가르침을 완전히 버리고 이제 자본주의를 식으로 돌려서 미식에 몰빵 해볼 생각도 하고 있는데 문제는 사진이다. 사진 망치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나의 손. 식은 항상 시각과 함께하기에 활자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 아쉽다.

나는 먹는 것이 남는 것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먹는 것이 곧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블로그에 카테고리를 팔까, 인스타를 열까. sns에 대해서는 조금 편견이 있어 시작하고 싶지 않은데.


#6

학교에 가서 인턴지원에 필요한 서류를 뽑으면서 오래된 책들을 모두 버렸다. 기록은 버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는 것에 비해서 지식을 버리는 부분에서는 가차 없다. 이래서 중간밖에 못 했나 싶은 생각에 머리가 띵했다. 나는 공부할 때 남들이 말하는 연속성, 흔하게 보던 책을 오랜만에 펼쳤을 때 새 기분으로 맨 앞 장부터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었다. 보던 부분부터 잘게 끊어서 시간도 쪽수도 나누어서 조각들을 모아서 하나의 책으로 엮는 편이었다. 조각조각 누더기를 기우고 또 기우고 다시 덮다 보면 결국에는 튼튼한 하나의 보자기나 양탄자가 되어 나를 날아가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기에.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런 공부 방법은 체계를 잡기에는 썩 좋지 못했던 것 같다.


본과 1학년으로 돌아가면 조금 달라질 것 같냐고 자문해봤는데 글쎄. 관성을 이겨내는 것이 좀 어려워야 말이지.


#7

요즘의 관심사는 사회성이다. 그리 흠이 없다고 생각한 대인관계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있었고 나도 4년간의 시간 동안 사회성이 떨어졌다고 자각했기 때문에. 원인이 무엇일지도 고민을 했다. 지나치게 레트로하고 오래된 것 역행하는 것들에 집착했기 때문일까, 나 자신의 내면에 천착하여 다상념한 인간이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고인물의 환경 속에서 4년간 일관된 엉덩이 씨름만 반복해왔기 때문일까.

유쾌-진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나름의 모토중에 하나였는데, 지금의 내 꼴은 그야말로 열 명의 선비샌님이 들어간 꼴에 지나지 않아 조금 걱정이 된다. 에헴. 나를 환기해 깨트려 줄 수 있는 경험들이 필요하다. 앞으로 5년간 인턴-전공의의 길을 걸어갈 사람이 고이지 않는 신선한 환기를 찾고 있다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맷돌도 없다. 

하지만 의외로 답도 단순하니, 그만하면 되었다. 나는 환자에서 벗어낫을 때만큼은 가장 의사답지 않은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었다.  


#8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이 7월에 개봉한다. 예고편이 잘 만들어졌기에 또 열심히 반복 재생하면서 빠져들었다. 놀란의 영화를 쭉 보다 보면 그가 늘 가지고 있는 인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시간에 대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시간은 늘리거나 줄어들게 할 수는 있지만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다.

본과 4년의 시간은 늘리자면 사람을 변하게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면서 쥐어짜면 아무것도 아닌 봄의 꿈과 가을의 소리 몇 번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어제를, 4년 전의 신새벽 아침을 바라보면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따라 뒷걸음질해 나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