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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블로그에 글을 쓸 여유가 생각보다 없었다. 이야깃거리는 많았는데,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오프 때의 시간을 여러 곳에 쪼개서 쓸 수 없다 보니 머릿속에 들어있던 글은 실타래처럼 풀어졌다가 헤지면서 시간이 지나 흩어져 날아가곤 했다. 보고 느꼈던 것들도 옮겨 적고 싶었던 것들도 무척이나 많았으나 막상 자판 앞에 돌아오니 남은 것은 많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 한숨을 돌릴 시간이 난 어느 저녁에 지난 턴들을 회상해본다.
응급의학과에 대한 작은 열망이 있었는데, 인턴으로 직접 돌아보니 열망의 불씨가 커져서 일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응급실에서 인턴이 하는 일들과 전공의들이 하는 일은 무척이나 달랐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하고싶은 인상적인 과의 첫 번째 칸에 응급의학과를 적었다.
#2
처음 응급실 근무를 할 때 가장 걱정되었던 부분은 24시간동안 액팅상태로 응급실 내에서 일을 해야 된다는 점이었다. 보통 병동당직이라고 부르는 36시간 주간-야간-주간 연속근무는 온콜on-call개념에 가까워서 병동, 수술방과 같은 곳에서 인턴을 찾는 콜이 오면 달려가서 필요한 일을 수행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눈을 붙이며 대기를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응급실의 24시간 당직은 말 그대로 내내 깨어서 인턴의 온갖 술기를 시행해야 하는 시간이다.
지금까지 나는 밤을 새본 적이라고는 1,2번 밖에 없었고 그것도 본과때가 아닌 학부생 때 친구들과 오기로 시험기간에 열람실에 있었던 경험이 전부였다. 24시간 근무를 상상하면서 나는 몇 번이나 몸서리치고는 했는데, 막상 해보니 어찌어찌 무난하게 해 나갈 수 있었다. 환자가 많아 발바닥에 불이날 때보다 오히려 한적해지는 시간대에 밀려오는 피로와의 싸움이 더 힘들었다. 특히 새벽 4시부터 근무를 마치는 아침까지의 시간은 가히 지옥의 시간이라고 부를 정도로 힘겨웠다. 잠은 쏟아지지만 마음 놓고 잘 수는 없고 시곗바늘은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깊은 새벽이 되어 복도의 불 꺼진 형광등이 어스름하게 다시 빛나면서 아침의 햇살이 응급실 창문을 비출 때 나는 안도감보다 몰려오는 피로감에 기진했다.
모든 사람들이 생기를 머금고 서둘러 출근하는 시간에 온몸을 아스팔트위로 늘어뜨리면서 걷는 꼭두 아침의 첫 퇴근은 무척 힘들었다.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져 갔지만.
#3
24시간을 일한 댓가로 주어지는 24시간의 완전한 휴식은 달콤했지만, 그만큼 대부분의 시간은 잠으로 채워졌다. 나는 오전에 6시간 정도를 자고, 오후를 보낸 뒤 다시 밤 시간에 7시간 정도를 자는 방식으로 생활했다. 수면시간 자체는 적지 않았지만 수면의 질은 그만큼 떨어졌기 때문인지 머리를 베개에 붙이면 코드를 뽑듯이 기억이 사라지는 현상이 몇 번이나 발생했다.
그래도 오프때마다 집 밖으로 나가서 무언가를 했는데, 한 달간의 규칙적인 당직-수면-일상의 패턴은 나쁘지 않았다. 하루만 일했어도 근무일이 이틀씩 날아가는 시간의 배속에 몸을 싣고 있는 기분도 들었고, 온 오프 모두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생활을 수년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4
응급실 근무가 온오프의 반복이었다면 찾아오는 환자들은 에피소드의 연속이었다. 응급실 진료를 보다가 보다가 떼를 쓰고 선생님들과 한바탕 싸운 뒤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이 병원을 나간 어린 환자가 있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약을 잔뜩 먹고 온 몸을 스스로 다치게 한 다음 다시 찾아온 환자의 이름을 대기 환자 명단에서 확인했을 때 응급실은 낮은 욕설과 한숨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내 자리에 없는 보호자를 찾으며 펑펑 울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마음이 아팠다. 나는 그의 병상 뒤에 가려진 마음 아픈 이야기를 영영 들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서글펐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가면의 생에 대해 고민해왔고, 가면과 안경을 벗고 맨 얼굴을 맨 눈으로 바라보고 싶어했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5
응급실에는 자해나 자살시도로 찾아오는 환자들이 아주 많다. 그들에게 자살과 관련된 평가지를 들이밀고 묻는 것은 인턴에게 있어서도 아주 괴로운 일이며 옆에 서있는 보호자에게 설명을 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피부의 겉 부분이 조금 까지는 것도 아픈 일일 텐데 도대체 무엇이 그들에게 그토록 몸 안 깊은 곳에 있는 혈관에 이를 수 있는 절망을 주었을까. 자살시도자들의 눈이 흐리멍덩할 것이라는 것은 굉장한 편견이다. 그들의 청명한 눈을 나는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부부싸움을 한 뒤 살고싶지 않다며 다툰 할아버지가 약을 한 움큼 먹고 의식을 잃었을 때 옆에서 할머니가 입으로는 험악한 욕설을 하면서 소리 죽여가면서 눈물을 삼킬 때, 가슴이 아프다며 찾아온 낯익은 환자가 사실 며칠전 응급실에서 숨을 헐떡이다 끝내 사망한 환자의 보호자였다는 것을 떠올렸을 때, 응급실은 소란스러운 시장통 바닥 속에서 가라앉는다. 가라앉았다가, 떠올랐다가를 수십 번 반복했다.
#5
CPR,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환자 앞에서 우리는 침식하게 된다. 응급실에서 소생술로 의식이 돌아오는 환자는 확률이 두자리를 간신히 유지할 정도로 낮다. 실제로 내가 들어갔던 CPR에서 단 한 명의 환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세상을 떠나갔다. 이미 죽어서 몸만 도달한 자, 죽음의 문턱에 서있다가 외딴 병원에서 숨을 거둔 자. 지난달에 인턴으로 경험했던 사망선고는 점점 더 죽음의 순간으로 가까워져 간다. 이제는 막 고갯길을 넘어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 사람들의 마지막이 내 앞에 놓여 스쳐 지간다.
단 한번 CPR을 통해서 환자의 자발순환이 돌아오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몸에 전율이 일었다. 죽음을 앞에 둔 환자의 곁에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을 쉽게 말할 수 없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것이 얼마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나는 말을 삼키게 되었다. 살려야 하는 사람들에게 무의미한 살아있음은 없다고 말이다.
#6
한달을 불태우고 났더니, 매달 턴이 바뀐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이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 어떤 즐거운 일도 끝이 있어서 더 아쉽고 행복할 수 있는 것처럼 힘든 시간도 끝이 있기에 추억으로 미화되고 할 만했다, 괜찮았다고 삼키어 넘겨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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