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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의속삭임

본과1학년 1학기 9주차 : 아름다운 이별

펜에게서 자판에게 2016. 4. 25. 00:45



#1


많은 사람들 앞에서 칭찬을 받았다. 으쓱한 기분이 우선 들었고 쑥쓰러운 기분이 되돌아왔으며, 잘때쯤 되니까 부끄러웠다. 


모든 인간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사람들의 관심을 좋아한다. 적어도 싫어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무대에 늘 서는 자리를 갖을 정도로 리더십이 있는 편도 아닌데다가 워낙에 뒤에서 꼬물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관심을 받을 기회가 많지 않았기에 쑥스럽다. 그래서 사실 칭찬과 환호를 받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조금은 머쓱하고 꽤 으쓱해지는 것 같다. 



#2


우리는 우스개 소리로 교수님들은 학생들의 호응과 환호성에 굉장히 익숙하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교수님들의 반응이 쑥스러워하시거나 민망해하시기보다는 다소 으쓱해하시는 모습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무리 수줍은 성격의 교수님이라도 교단에서 몇 년 정도 서서 학생들의 박수갈채를 받다보면 익숙해지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사실 교수님들도 머쓱해하시는 걸 수 있겠다는건 오늘 처음 알아차렸다.)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에 익숙해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부분쯤에 자신을 경계할 수 있는 비석을 심고 싶었다. 사람들의 칭찬과 인기에 익숙해지다보면 방구석에서 눈을 감은 나를 잃을 것 같기에. 구도하는 나를 잃고 벼랑 밖으로 뛰쳐나갈 것 같았기에. 무대 위의 별이 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늘의 별을 흔들리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3


그래서 자기전에 이불킥을 했다. 나서서 칭찬 받은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칭찬을 받은 뒤 나의 애매한 반응 때문이다. 칭찬해준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으면, 혹은 쑥쓰러움이나 머쓱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으쓱함을 가렸으면, 혹은 으쓱한 마음을 과장해서 쑥쓰러움을 돌려표현 했으면. 사람들에게 조금 더 편하고 원한만 인상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는 타인의 시선을 미친듯이 신경쓰고 살아가고 있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에밀 아자르는 묻는다. 가면이 나인가? 내가 가면인가? 가면을 벗지 않을 거라면, 나를 버려야 할런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지금껏 그러지 못해왔고,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 것이 분명하지만.



#4


일기가 자아성찰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이럴 때는 확실히 동의할 수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글쓰기는 사람을 내적으로 성숙시키는 길이 분명히 될 수 있다. 그 대상을 올바르게 비추이기만 한다면 말이다. 



#5


지도교수님과 식사를 했다. 그래. 시험들은 잘 봤고? 우리는 차례차례 최선을 다했습니다! 교수님! 더 열심히 하겠쑵닏다 겨수님!!을 연발했다. 


#6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다른사람을 사랑하면 변하게 될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글쎄? 과연 그럴까? 오히려 나는 진정으로 나를 사랑했던 누군가와도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 대한 자신을 잃고, 구도의 세계로 빠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쨌든, 오랜만에 나를 지나간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7


대부분의 첫 연애가 그러하듯 나의 첫 연애도 아름답지만 부질없이 끝나버렸다. 이별의 허망함에서 빠져나왔을때쯤, 존경하는 은사님과 술을 한 잔 하게 되었는데 내게 스쳐지나간 그 사람의 미래를 함께 축복해 주자는 말을 하셨다. 그리고 건배를 들이 받으셨는데, 잔을 받기는 했지만 당시에 속으로는 상당히 뜨악스러웠었다. 그 사람을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축복이라니?


헌데, 사람이라는 것은 역시 신기해서 나이가 들면서 모난 부분이 다듬어지기도 하고, 마음속에 자신만의 시니컬한 날을 가져다 세우기도 하면서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것 같다.(그것을 성숙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은사님이 했던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 최근에 다시 만났을 때 그 얘기를 드렸더니 엄청 웃으시면서 우리가 나이를 먹는구나 하셨는데, 그 웃음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또 그립다.



#8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좋은 이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헤어짐은 그 자체로 '괴로운 것', '가슴아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좋아했던 감정을 작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설레였던 마음을 손과 손이 스쳤을 때 떨렸던 두근거림을 곱게 접어 스쳐 지나갈 수 있다면, 


이별은 만남과 동등한 무게를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헤어짐의 예감이 몰아닥친 연인이라면 쏟아지는 폭우의 한 가운데에서 이별이라는 동화책의 마지막장이 있기까지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가 펼쳐져 왔는지 한번쯤 떠올릴 필요가 있다. 만남을 굳이 운명으로 미화하지 않아도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 역시 나를 사랑했다는 그 사실은 그 자체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으리라. 이별의 한 가운데에는 분명히 아름다움이 있다. 많은 경우에 그 아름다움이 다른 감정들의 태풍에 가리워 보이지 않을뿐.



#9


그래서, 나는 지나간 사람을 생각한다. 나는 이제 그 사람의 아무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몇 십 킬로가 떨어진 어느 곳에서 늦은 밤시간에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는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직도 남은 나의 이기심이 나만이 그러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눈을 감고 생각하면 그 사람도 내가 잘되기를 빌어주었을까? 하는 궁금함이 떠오른다. 당장의 일은 알 수 없겠지만 내가 아는 그 사람이라면. 시간이 흘러 각자의 이야기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길 빌어주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