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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기들과 벚꽃 구경을 나섰다. 밤의 벚꽃길 아래를 걷는데 알 수 없는 센티멘탈리즘이 몰려왔다. 누군가가 십수년전에 그러했고, 내가 수년전에 지웠을 감정이 또 다시 떠올랐다.
나는 예전부터 벚꽃을 보면 괜한 감상에 빠지곤 했다. 멋지다, 아름답다라는 생각보다는 떨어지는 가을의 낙화 너머로 겨울을 들춰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꽃이 '진다'는 것은 나에게는 무언가의 끝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계절의 끝, 삶의 끝, 꿈의 끝. 우울함을 토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끝을 새로운 시작으로 생각하는 진취적인 인간도 아니다.
나는 그저 어느 세상의 끝에서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 나약한 단신의 인간이 받을 감성적인 느낌, 고립감과 기대감이 복잡하게 뒤섞인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슬픔을 좋아하는 것 뿐이다. 짚어보니 나는 다소 자학적인 취향이 있군 그래?
#2
벚꽃의 한가운데에서 동기들과 진로와 꿈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누었다.
역시나, 다들 어느정도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이 보기 좋았다. 나는 솔직히 아직 나의 진로나 '의사'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그래도 최근에 교수님과의 자리에서 제법 좋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의사'란 나중에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아프게 되었을 때 연락을 하는 동기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어떻게 보면 꽤 합리주의자스러운 발언이셨는데(실제로 내가 그 교수님께 받은 인상은 합리주의자였고, 어느정도는 롤모델로 삼고 싶었다) 그럼에도 제법 내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3
의대 생활의 치명적인 단점을 알아냈다. 동시에 나의 문제점도.
우선 의대 생활의 단점이라고 치면 지나치게 계속적으로 단체 생활이 반복된다. 9 to 6 같은 교실에서 부딪히고 수업이 끝난 뒤에도 많은 활동으로 동기들과 선후배들과의 만남과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지난주 시험이 끝난 뒤부터 슬금슬금 차오르는 감정의 정체를 오늘에서야 알았다. 나에겐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살면서 필요에 따라 지금껏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온 적이 많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내 내향성의 얼굴이 가면 밖으로 절규를 내지르고 있었는데 그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입학전에 다른 친구들과 의대생활에 적응을 잘 할 수 있는 체질인지 아닌지 얘기를 했었는데, 모든사람들에게 있어서 나는 논의의 여지없이 무난하게 생활할거라는 쪽이었다. 헌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모르고 있었다. 지금 나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내가 동기들 중에 가장 먼저 지쳐 떨어지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
#5
그래서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서 술을 왕창 퍼마셨다. 예정에 없을 정도의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제법 마음은 홀가분했다. 주말의 지금에와서 생각해보면 꽤 스트레스 해소가 되었던게 아닐까 생각된다.
술마실 때 가끔나타나는 재미있는 나의 특이한 생리적 현상중에 하나는 오른쪽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나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 그렇게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눈꼬리 끝으로 계속 눈물이 새어나온다. 펑펑 눈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묘하게 닦아도 닦아도 계속 눈꼬리가 얼룩져서 꽤나 신경쓰인다. 아마 교감-부교감 신경계의 마비나 혼란이 원인이거나 눈이 건조해져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쉴새없이 눈을 찡그리고 닦아내야 해서 꽤 거슬리지만 술에 대취한 상태에서는 썩 마음에 드는 현상일때도 있다. '한쪽 눈으로는 울고, 한쪽 눈으로는 웃고'라는 표현이 김승옥의 소설에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로치면 피카소적인 감각이 느껴진다. 왼쪽 눈으로는 웃고, 오른쪽 눈은 눈물점으로 울며, 입으로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정도로 입체감을 표현할 수 있을텐데 역시 내가 하면 오글거린다.
#6
찾아보면 눈물점은 일본어의 번역어에 가깝다고 나오는데 썩 마음에 드는 단어다. 재미있는 것은 의학 용어에도 '눈물점'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이다. 눈물샘에서 눈물이 흘러나와 코쪽으로 주행하기 위해 들어가는 입구의 포인트를 일컫는 단어이다.
(눈물은 보통 lacrimal punctum을 거쳐 lacrimal duct로 흘러나간다)
#7
가끔 동기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이래저래 힘든 의대생활 때문에 혼자서 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던데(물론 여자동기들이 대체로 그렇게 말한다), 나에게도 울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렴. 술에 취해서 나오는 반사적인 울음이든 감정이 동해 흘리는 울음이든 어떠하리라. 억지로 웃는 것이 진짜의 웃음만큼과 거의 동등한 생리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짓 울음이든 참된 울음이든 눈물은 그 자체로 흘리기 아까울 정도의 값어치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한 쪽 눈가에 눈물점이 세개나 있다. 예전에 피부과가서 점을 뺀적이 있는데 다시 생긴 것인지, 의사선생님이 안빼주신건지 모르겠다만 지금에 와서는 한바탕 울어야 할 운명을 가졌다고 생각하니 썩 마음에 든다.
어쨌든 센티멘탈했던 한주가 또 지나간다. 간만에 또 훌쩍거리면서 센치한 척 하는 글을 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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