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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뇨의학과는 흉부외과와 더불어서 아마 전국에서 가장 전공의가 부족한 수술과 중에 하나일 것이다. 말하자면 기피과인데 기피과가 된 이유는 '비뇨'라는 과 이름에 대한 인식도 한몫했을 테고, 보험이나 진료범위와 같은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비뇨기과에서 비뇨의학과로 바뀐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과 이름을 다시 바꿀지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도 있을만큼 고민이 많아보였다. 예전에 피부비뇨가 붙어있을 때에도, 바이탈과들이 강세였더 시대에도 비뇨는 그래도 꽤 실력 좋은 사람들이 가는 과였다는 이야기가 호랑이 구름과자 시절처럼 아롱아롱 돌아다닌다.

 

결국에는 전공의들의 숫자가 줄다보니 업무의 강도가 점점 올라 지원자가 적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되었고 이제는 과장되는 교수님이 구인 사이트에 고민 말고 비뇨의학과로 오세요! 하며 장점을 어필하는 글을 적는 시대가 되었다. 전공의를 최고로 우대해줄 테니 한번 와보라는 글이 웃픈 현실에 동기들끼리 보면서 웃었는데.

 

 

#2

 

비뇨의학과는 인턴이 레지던트의 공백을 대신해서 주치의 일을 해야 하는 과였다. 인턴일도 하면서 주치의 일까지 얹어지니 훨씬 힘들 것 같지만 경증, 혹은 수술 전 환자상태가 양호한 환자군들이 입원했기 때문에 인턴잡도 많지 않았고 주치의 일도 꽤 편했다. 비뇨의학과 병동은 아침마다 정맥채혈을 하는 병동이기도 했는데 환자군이 워낙 좋아서 팔에 정맥들이 퐁퐁 뛰고 있어서 술기에 자신감이 붙었다. 자신감은 다음 달로 넘어가자마자 물먹은 티백처럼 녹아내렸지만.

 

수술 예정에 따라 환자를 입원하고 정해진 일정에 따라서 경과를 보는 일도 나름 재미있었다. 주치의라고 나름 신경 써주고 수술을 조금씩 알려주며 넘겨주거나, 마지막쯤에 봉합을 넘겨받아 마무리하는 일들도 즐거웠다. 마취과 선생님들과도 친해지면서 지옥불 같이 고통스러운 전공의의 시간 속에 숨겨진 재미를 1정도 엿볼 수 있었다.

 

몇 번쯤 선생님들이 비뇨의학과에 오지 않겠냐고 넌지시 영업을 하기도 해서 잠시 흔들리기도 했다. 무슨과를 갈지, 어떤 내가 될지 명확하게 그려놓지 않았기 때문인지 더 마음은 흔들렸다. 지금은 지난 추억이 되었지만.

 

 

#3

 

비뇨의학과는 매주 금요일이 수술이 없는 날이었고 오전 외래를 마치고 나서 교수, 인턴들이 점심을 먹는 좋은 덕목을 갖춘 곳이기도 하다. 당연히 메뉴선택은 막내인 인턴들의 일이었고 적당히 신선하면서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를 고르고, 미식가들처럼 서로 평을 해가며 먹는 자리가 사뭇 두근기도 했다. 노교수님들까지 복사뼈를 넘는 긴 양말에 구두 타이까지 갖춰 입고 나와 점심에 차나 커피에 디저트까지 먹는 풍경은 조금 멋있었다. 학생 때는 타이에 셔츠를 갖춰 입으라고 압박하는 과가 있으면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찌 된 일인가 싶었다. 이것도 스톡홀름 신드롬인가?

 

나도 기성세대로 편입되는 것일 수도 있었고, 격식은 갖추되 그 안에서 편안하게 농담을 주고받고 떠드는 분위기가 멋지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왜 킹스맨에 나오는 유명한 Manners makes man라는 말도 있지 않나. 그렇게 대학가의 골목을 주머니에 손가락을 찔러 넣고 구둣발로 쏘다니면서 허허 웃는 순간들은 퍽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한 번쯤 진짜 비싸고 오래되고 유명한 식당을 식사자리에서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지나가는 말로 나왔는데 사달라고 조르는 것으로 들렸는지 교수님들은 차로 친히 인턴들을 모시고 옆동네까지 점심을 먹으러 원정을 뛰기도 하셨다. 초밥 먹으러 일본으로, 쌀국수에 빵커피 먹으러 베트남으로 당일 여행을 갔다 오는 게 이런 기분인가? 고기 한 입 먹었으면 너 우리과 오는거다? 하는 농담이 아직도 귀에 들리는 것 같다.

 

 

#4

 

비뇨를 돌 때쯤 일 년 열두 달 가운데 여덟 번째, 2/3에 해당하는 지점이었기 때문에 넘어가면서 확실히 말턴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지나간 시간과 남은 시간을 분수로 비교하는 것은 나의 못된 버릇이자 눈속임이다. 시간이 아주 조금밖에 지나지 않았더라도 분수 속에서 숫자는 크게 흘러간다. 신사가 되기에는 아직 너무 유아스러웠고 나는 호들갑스러웠다. 인상적이고 지원을 잠시나마 꿈꿔보았던 한 달이 또 스쳐 지나갔다.

 

 

 

환자군이 워낙 좋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