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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아과는 코로나 + 출산 저하의 강냉이 핵펀치를 맞아서 환자수가 격하게 줄어든 과 가운데 하나이다. 코로나 여파로 타격을 받은 과로 보통 이비인후과와 소아과를 고르는데 학생 실습을 돌았던 2년 전만 해도 입원병동 환자수가 꽤 되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회진준비하고 대기하는 시간이 어마어마했기에 '도대체 회진 대기는 무엇을 위한 시간인가?' 하는 고민에 휩싸였었던 것이 떠올랐다.

 

실습을 도는 본3, 본4의 주된 일은 '대기'라고 말했을 때 반박할 수 있는 본과생이 아마 별로 없을 거다. 과제도 실습시험도 강의도 모두 있지만 역시 짱박히거나 복도에 우두커니 쭈뼛쭈뼛 서서 대기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아무도 학생을 신경써주지 않고 외롭고 뻘쭘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인턴이 되어보니 옆에서 무심하게 일을 하던 전공의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앉으라고 하기에는 일개 인턴으로 실습학생에게 신경을 써줘도 되는 것인지 망설이게 되고 나에게 주어진 일은 잠시 눈을 돌리면 정신없이 주변을 잊을 정도로 많았다. 교육도 분명히 대학병원이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지만 고년차, 치프정도 되는 전공의들은 학생을 신경 쓰기에는 해야 할 일이 산적해있을 터였다.

 

 

#2

 

편한과는 보통 잡일이 있는 편인데 소아과의 잡일은 그 중에서도 아주 가벼운 편이기에 나는 인턴숙소 지박령처럼 휴게실을 지키면서 떠다녔다. 어그적거리면서 간식을 먹으러 휴게실에 나가면 늘 마주치는 항상 나른한 얼굴들이 있었다. 우리들에게 꿀턴이라고 부르는 상대적으로 인턴잡이 편한과들. 천장에서 꿀이 퐁퐁 떨어져서 아 하고 입을 벌리고 파리가 날리게 누워있는 과들. 콜이 오면 어김없이 다들 주먹을 하늘로 추켜올리며 차곡차곡 모아 병동을 다녀오곤 하지만.

 

소아과의 병동 일은 대단한 것이 없었다고 말하고 마침표를 찍으려 했더니 아이들의 깨깨 우는 울음들이 떠올랐다. 코로나검사를 할 때 성인도 간혹 검사자의 손목을 잡거나 치는 경우가 있지만 미리 주의를 주면 그럭저럭 참는 편이다. 하지만 고통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손버둥발버둥을 치기에 검사용 면봉을 몇 개나 다시 쓰는 일이 흔하게 있었다. 엉엉 우는 아이를 보는 부모님도 마음이 아프고, 검사를 다시 해야 하는 나도 속이 쓰리고.

 

외래에서 아이들을 재우고 수면검사를 끌고가는 일도 흔하게 있었는데 산소포화도를 모니터링 하는 기계를 뒷짐지고 든 채로 아이를 어부바 한 부모님과 쫄래쫄래 검사실로 다녀오는 일은 강아지와 산책하는 일처럼 신선했다.

 

 

#3

 

보통 소아라고 하면 아장아장하는 갓난아가, 유치원 연령 정도를 생각하지만 엄밀하게 의학적으로는 만 나이로 성인이 되기 전까지를 소아라고 구분하고 있다. 비뇨기과가 비뇨의학과로 이름을 바꿔야 했던 고민처럼 소아과도 환자군을 보다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소아청소년과로 명칭을 바꾼지 몇 년이 되었다. 줄이면 소청과라는 약간 짝꼬 소중한 과일느낌의 명칭이지만 아무도 소청과라고 부르진 않는다. 소아과는 소아과다. 재미있는 건 소아과 선생님들도 10대 초중반 아이들에게 '청소년'이라는 호칭보다는 큰애기라는 표현을 쓰는데 옆에서 들을 때면 퍽 소아과다운 단어라는 생각이 드는 사랑스러운 어감이다.

 

표현은 사랑스러울 수 있지만 입원해 있는 큰아기들을 보는 일은 마냥 사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어린 나이부터 입원을 오래 하면 조숙해진다는 말처럼 병원 생활에 물든 아이들은 약과, 치료와 의료진들의 사탕발림을 너무 잘 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주사를 찌를 때 아파할만한 아이가 아파하는 티 하나도 내지 않을 때 오히려 내 마음은 바늘로 찔린 것만큼 아파왔다. 과자와 컵라면과 떡볶이와 온갖 몸에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불량식품을 한가득 먹고 싶다고 말하며 검사 수치가 조금 호전되었을 때 과자를 와구와구 먹는 아이를 병실에서 보고 있자면, 보호자들이 왜 그렇게도 자신의 아이가 아플 때 떼를 쓰고 울먹이는지 마음으로 끄덕이게 된다.

 

 

#4

 

보통 인턴은 낮 근무가 편하면 밤 시간의 당직이 힘들고, 당직이 편한 파트면 오전 근무가 힘든 과로 배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소아과의 경우는 정말 몇 안 되는 당직도 편하고 낮시간도 편한 과였다. 오죽하면 우리가 황제당직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괴담처럼 10시에 잠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다음날 8시여서 놀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였다. 실제로 당직시간은 매우 편했어서 당직 전 날 일부러 늦게까지 깨어서 피로한 상태로 출근한 적도 있었다.

 

인턴들의 숙소 이야기를 지금까지 별로 하지 않았는데, 사실 인턴 숙소는 삭막한 인턴생활에서 그야말로 오아시스이자 우리들의 선술집이었다. 버린 드레싱 재료와 챙겨둔 의료기기와 약품들이 구석구석 먼지 쌓여 뒹굴고 있었고 컴퓨터 앞에서는 명단과 차트를 계속 보아야 하는 과 인턴들이 앉아서 탄산을 홀짝거리면서 이따금씩 욕을 한 번씩 허공에 뱉고는 했다. 샤워실은 시골 동네의 목욕탕을 연상시킬 정도로 문도 다 부서져 있었지만 면도기에 바디워시에 있을 것은 모두 구비되어 있었고 치약도 어디서든 쓸 수 있게 세면대에도 샤워실에도, 심지어 공용 테이블 위에도 굴러다니고 있었다.

 

대학으로 치면 지저분한 동아리방이나 과방정도 느낌일까? 거기다가 쌓아놓은 불량식품과 간식들이 그득그득했으니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드라이기로 말린 약간 젖은 머리에, 아빠다리를 하고선 인턴들이 떠드는 공간에 같이 부유하며 하루를 보내는 일은 행복했다.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들에 대한 걱정과 우리의 사소한 웃음이 곁에 있었고, 누군가의 코드블루와 새파란 색 조명을 자기 전에 켜 두던 캡슐침대에서의 꿈이 벽 하나를 두고 지나갔다. 병원의 일상은 우주 속을 떠가는 유람선처럼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