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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신없이 2학기의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몇 차례의 시험, 자잘한 모임, 동아리의 행사 한두개를 마치고 났더니 학기의 1/3이 지나가버린 셈이다. 아직 일반학부는 개강하고 3주 정도나 지났을 시기이려나.
#2
학부생들과 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즐거운 점이 있다면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와 같은 어린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들을 엿들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학부생들이 어린아이냐고? 적어도 그들에게 나는 명백하게 아재다) 대부분의 노랫소리는 시덥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오늘 수업 듣는데 옆자리 앉은 동기가 어쨌다거나, 지난주에 데이트에 서로 싸우고 마음이 돌아서려고 한다거나, 저기 앞에 가는 사람 정말 덥지도 않나? 이런 날씨에 긴팔셔츠라니? (나는 뜨끔했다)
그리고 대체로 시덥지 않은 것들 속에는 늘 진귀한 것들이 숨겨져있는 법이다. 나는 그렇게 스쳐지나면서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뿜는 젊음에 잠시나마 비겁하게 몸을 드리우곤 한다.
야 이 연극 정말 재미있을 것 같지 않냐?
나는 고개를 슬쩍 들어서 앞에선 학생들을 지나 게시판에 붙은 포스터를 본다. 시인. 윤동주.
#3
올해였나 작년쯤이었나 부쩍 윤동주와 관련된 홍보를 많이 보았던 것 같다. 윤동주를 그린 연극이었는지 뮤지컬이었는지도 분명 몇 번이나 홍보영상을 보았던 것 같은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나는 많고 많은 시인들 가운데 윤동주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의 시는 언어를 펼쳐놓고 깎는 쪽도 아니고 매정한 현실의 절벽을 맞이해 벼르고 선 시는 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다소 유아적인 느낌이 묻어나거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져보면 그도 '룸펜'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알 수 있다. 그는 괴로움을 읊조리고 지식의 사치로움을 버거워하지만 결국 밤을 훔친 장발장이 되어 어두운 거리에서 쫓기며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나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자화상적인 괴로움보다는 차라리 김승옥의 센티멘탈리즘이 낫다.
삐딱하게 생각하고는 해방촌의 골목을 걸으면서 나는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 바람이 이기 시작했다. 눈을 얇게 저미며 나부끼는 바람을 맞으며 나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공허함을 느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4
유치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의 시가 떠올랐다.
흔들리는 은행나무의 가지 아래로 그가 보였다. 동주에게 주어진 독립과 조국의 수식어는 그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짐이 었거나 그의 표정을 가리우는 가면이었음에 분명하다. 그도 힘없이 펜을 내려놓고는 입술을 앗아가는 바람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던 인간에 불과했었던 것이다. 나무에 손을 얹고 저 멀리서 붉은 태양이 지는 것을 보면서 눈물을 떨어트릴 수밖에 없는 인간.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텅 빈 벤치에 앉아 다가오는 밤을 바라보았다. 조명을 받은 동상과 건물들이 한층 더 나를 침잠하게 했다. 하지만 떨군 고개를 들면서 손을 짚고 허리를 세워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는 분명 하늘을 나뭇잎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았으리라. 그리고는 스스로를 다잡으면서 발을 옮겼을 것이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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