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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뿅하고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고 사실 작년부터 줄곧 동기인 K군, K형과 줄곧 일본의과대학과의 교류를 노래노래 불러왔는데 운이 좋아 이번 여름에 다녀올 기회를 얻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운이 좋았다. 우리를 받아줄 이유가 1도 없었는데.
후쿠오카 공항은 국제선을 이용할 경우에 버스를 타고 공항 지하철역에 내려서 공항노선을 또 타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한다. 셋이서 여행을 가니 느낀 첫번째는 일행이 있다보니 사진을 좀 덜 찍게 된다는 점. 먹을 것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혼자 다닐 때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리면서 동네 구석구석을 다 훑어보는 여유는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어쩌면 일주일 내내 여행보다는 실습에 가깝게 병원을 나갔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도착한 첫날부터 나름 빡빡한 강행군이 이어졌는데, 지금생각해보면 굉장히 잘했던 일 같다. 첫날 빼고는 여유롭게 여행했던 평일이 거의 없었다.
모츠나베를 먹으러 갔다. 臓(もつ)는 일본어로 내장을 의미하는데 우리나라 말로 곱창전골정도가 유사한 말이 아닐까 싶었다. 전골치고 꽤나 맑은 느낌의 국물에 곱창들이 둥둥 들어있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별미였다. 3대 모츠나베원조집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가격도 무시무시했다. 나중에 실습도는 일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원래 모츠나베는 그 정도 가격이라고 한다. 우리가 술을 안마셔서 다행이었다고 말하는걸 보고 헣헣허. 그렇구나.
셋이서 여행해서 느낀 점 두번째는 맛에 까다로운 일행 덕분에 꽤 식도락 퀄리티가 높았다는 점. 퀄리티도 퀄리티지만 상대적으로 소식파인 나와 K형과 비교해서 무척 잘먹는 K군이 우리를 열심히 몰아줘서 야식도 꾸준히 먹고 편의점별로 이건 꼭 먹어봐야해! 하는 트레이드 마크 같은 음식들도 찍어나갈 수 있었다. (K형이 끊임없이 소화제를 먹었다)
나베요리를 먹고나서 가까운 분위기 좋은 신사가 있다고 해서 걸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K군은 미식가 + 강철체력 타입의 기계남이었기 때문에 일본여행 내내 엄청난 걸음 수로 후쿠오카를 횡보했다. (저질체력인 내가 K군에게 버스를 강요했다)
가게가 잘 보이지 않는데 일본의 흔한 패밀리 레스토랑.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격대가 조금 쎈 곳이라고 들었는데 어찌어찌 누군가가 사진을 찍었다.
신사의 사진도 한장. 신사는 경우에 따라서 한국인의 입장에서 묘한 거부감이 있을 수 있는 장소라는 생각도 조금 있지만 그런 것보다는 새로운 장소를 본다는 의미 정도로 한 장.
K군은 신사 자체보다는 신사가 위치해 있는 숲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가자고 했는데, 정작 숲의 사진은 남기질 않았다. 아니, K군의 사진첩에는 있을텐데 분명히. 오래된 숲의 분위기는 좋았고 우리는 시험으로부터의 해방과 방학의 기분을 만끽했다.
직장인과 비지니스 호텔이 엄청나게 많은 하카타 역 근처에 숙소를 잡았고 마침 축제의 준비 기간이었어서 거리 곳곳에 저런게 세워져 있었다. 찾아보니까 특정 신사의 봉납제의 행사 같은 것인데 시내 곳곳에 열댓개 정도의 가마를 꾸며놓는다고 한다. 어쩐지 길거리 곳곳에 세워져있더라. 나는 '저 위로 누군가가 올라가서 가마싸움 같은걸 하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가마마다 특성이 있고 애니메이션이나 이야기 속 등장인물을 특징적으로 꾸민 가마가 있어서 그런 부분을 보는게 감상 포인트였다. 막상 봤을 당시에는 아무 생각없이 와 크다~ 올라가보고 싶다~ 그런 생각 밖에는 없었다.
바닷가가 보이는 해안가로 왔다. 깜빡했는데 후코오카는 해안가 도시였고, 대부분의 해안가 도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꽤 낭만적인 장소이다. 페리선이 정박해 있었고
밤이 되자 한 껏 불을 밝혀 출항 분위기를 냈다. 나이 육십쯤 먹은 할부지가 되면 페리선 타고 세계여행을 한 번 할 수 있지 않을까 얘기를 했고, K군이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가스등을 켜두고 나와서 나중에 요금이 어마어마하게 청구된 내용을 덧붙였다. 우린 바닷가에 비친 불빛들마냥 흐르는대로 의식을 따라 말을 내던졌고 퍽 센티멘탈한 감정을 느꼈다.
요시즈카역. 일주일간 이 역을 통해서 인근의 대학병원으로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아주 작은 역이었고 우리가 있는 숙소에서 한 정거장밖에 떨어지지 않은 역이었다. 하지만 역시 일본의 지하철을 처음타는 첫날은 어버버어버버하면서 떨게 된다.
병원으로 들어가는 풍경은 대충 이렇고
병원쪽에서 나오면서 보는 풍경은 또 이렇다. 전반적으로 높은 건물이 없고, 아파트단지보다는 맨션과 단독주택에서 생활하는 주거공간의 특성 때문에 도시의 풍경이 서울과는 꽤 다르다. 전반적으로 길거리가 깔끔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것도 있겠지만.
병원 첫 출근. K군의 수신자 메일이 여러개였다는 제보에 따라 한국에서 오는 팀이 우리 외에도 더 있는 것으로 알고 희망차게 1층에서 기다렸는데, 알고보니까 그 나머지 수신자들의 메일주소는 나와 K형의 것이었다! 진짜 우리 밖에 없는거라고?! 꼭두새벽부터 초멘붕하면서 긴장했지만 생각보다 선생님들은 친절했고 영어와 한국어와 일본어를 적절하게 피자쪼개듯이 분할해서 우리는 열심히 의사소통을 하는데 성공했다.
나는 낯선 외국에 갔을 때 처한 언어 스트레스 상황이 무척이나 즐겁다. 특히 그 나라의 언어에 내가 관심이 있고 조금 할 줄 알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의 표현을 들으면서 가져올 수도 있고 평소에 궁금했던 표현을 직접 써보고 물어볼 수도 있기도 하니 말이다. 아기가 되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를 세상에 던져졌을 때의 느낌은 무척이나 자극적이고 불안하다.
스릴넘치는 모험, 놀이기구의 꼭대기에서 내가 늘 스스로를 속이는 말 중 하나가 '긴장과 설렘은 따지고보면 유사한 감정'이라는 말이다. 나는 그렇게 실습 첫 날을 설렘으로 기록했다.
아무리봐도 첫째날 먹었던 저녁이 아니라 둘째날 먹었던 저녁 같은데. 사진이 뒤죽박죽이라 모르겠다. 햄버거스테이크, 가라아케같은 요리를 앞에 놓인 칩 만큼 리필해서 먹을 수 있던 식당이었고 양으로 승부하는 우리에게 아주 좋은 가게였다. 그치만 생각보다 양이 많았고 튀김요리의 입에 물리는 특성상 전원 항복하고 마지막 칩은 결국 소프트드링크에게 넘어갔다.
여태껏 나는 일본의 소프트드링크가 소다, 사이다 같은 탄산류를 의미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메뉴판을 받아보니 죄다 과일주스만 들어있었다! 무척 시원하고 얼음이 작아서 좋았지만 역시나 음료의 양은 적었고 몇 번 홀짝거리니까 잔의 바닥에 얼음이 차갑게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첫날의 야식은 닭꼬치와 바움쿠헨과 호로유이 같은 저농도 알코올 음료였던 것 같다. K군이 매일 맥주야식을 우리에게 푸시푸시했는데 자기전에 먹는 편의점 야식은 꽤 즐거웠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지금에 와서도 더 많이 먹어보지 않은 것이 가장 아쉽다.
둘째날은 실습의 내공차가 일본에서도 드러난 것인지 내가 속해있는 과의 학생실습이 무척 일찍 끝났다. 처음에는 하염없이 주변을 걸으면서 돌아보려고 했는데, 후쿠오카의 날씨 : 더움 + 습함. 내 상태 : 긴바지 + 정장셔츠. 였기 때문에 병원 주변을 반 바퀴 돌고 주변의 카페로 냉큼 기어들어갔다. 일본에서의 커피한잔과 함께하는....그렇지만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노트북도 숙소에 두고 왔고, 그저 빈 종이 몇 장과 펜 하나만 달랑. 그래서 글을 좀 썼다.
여행도 그렇고, 인생 대부분의 것들에 있어서 내게는 학습곡선이 필요하다. 조심스럽게 메뉴얼을 읽고 또 읽어서 실수없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나의 순간순간의 성격, 대범함, 재능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순전히 그날그날의 운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한국에 있는 투덜이 박군은 이걸 운칠기삼이라고 노래노래부른다.
아마 첫 날 우리가 버스를 탄 다음 일본의 버스요금시스템을 잘 몰라서 십엔단위를 못 맞추고 그대로 백엔단위로 통에 털어 날렸기 때문에 이런 내용을 썼던 것 같다. 일본의 버스는 예컨데 100엔짜리 동전을 승객이 직접 동전환전기에 넣어서 10엔짜리 10개로 쪼갠다음에 금액에 맞춰서 내는 시스템이다. 버스기사 아저씨는 레알루다가 우리에게 "한번 낸 돈은 돌아오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재미있었던 것은 버스 차임벨을 누르고 정차한 뒤에 느긋하게 짐을 챙기고 일어서서 돈통에서 돈을 바꾸고 계산하고 내리는 과정이 몇 분이 걸려도 차에 있는 그 누구도 눈살 찌푸리지 않고 무신경하게 있다는 점.
다른사람을 향한 배려라는 느낌보다는 잘 형성된 문화적인 관점, 혹은 가치관이라고 생각했는데 무척 부러웠다. (한동안 우리는 챠임을 누르고 내릴 준비를 하느냐 바뻤다)
사진 이야기가 전혀 없는데 원나라와의 전쟁 때 뭔가를 주창했던 승려의 동상과 그 당시의 문구를 적은 한자따위가 깃발로 주변에 놓여 있어서 살짝 찍어봤다. 일본을 정벌하려고 몇 차례나 수군을 만들고 군사를 무지막지하게 보냈는데 그때마다 기묘하게 태풍이 불어쳐서 정벌에 실패한게 원나라였던가? 역사에 무지하군. H군.
마침 비가 조금 오는 날이었는데 지나가다가 보인 골목길의 풍경이 좋아 찍어보았다. 이날 안약을 사기 위해서 드럭스토어를 찾아서 점심 때 나갔다왔는데 10분거리였음에도 거의 땀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서 낑낑거리면서 돌아왔다. 그런데 오후에는 비라니. 후쿠오카의 날씨는 요상하네요.
까마귀가 보여서 한 컷. 까마귀가 무척이나 많다는 것이 신기했다. 일본은 까마귀를 길조라고 여기기 때문일까? 나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커다란 개의 울음처럼 낮은 소리기에 무척 좋아하기에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다. 무척 똑똑한 녀석들이라서 내가 다가가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저물어가는 하루의 뒤로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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