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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활의학과는 내 또래의 본과생에게 있어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전공과 가운데 하나이다. 응급의학과가 환자를 보는 것을 초치료보다 더 빠른 개념으로 0차 치료라고 표현한다면 일반적인 바이탈을 다루는 과라고 불리는 내외과들의 영역은 1차 치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재활의학은 1차 치료부터 한 번 더 떨어져서 2차 치료를 담당한다. 


당연히 1차 치료와는 대립하거나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도 있고 (내과에서는 환자를 절대적인 침대 안정을 취하게 하고 싶어 하지만 재활은 가능하면 빠른 보행 및 재활운동을 강조한다) 이것은 0차 치료스러운 응급과 1차 치료영역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


바이탈을 다루는 과들이 2차 치료를 담당하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재활의학은 기능 중심적으로 접근하여 환자를 총괄하다 보니 맡고 있는 영역이 엄청나게 넓어 보였다. 넓고, 그리고 어설픈 내 시각에서 보기에는 얕아 보인다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다. 내가 의학에 대해서 무엇을 알겠냐만은. 


수술은 늘 성공적인데 어째서 환자는 삶의 질이 수술 전에 비해서 큰 차이가 없이 여전히 힘들어하는지 생각해보라는 교수님의 말은 그래도 가슴에 날아와 콕 박혔다. 



#3


한동안 잡아 읽던 이청준의 단편선을 완독 하지 못했기 때문에 김훈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설을 읽을 때면 한 명의 작가는 하나의 독특한 분위기로 다가오게 되는데 김훈은 나에게 있어서 눈물처럼 떨어진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면 코가 시큰거리고 눈이 움찔거려 한 홉에 읽어내기가 힘들다. 눈을 감고 벌벌거리는 마음으로 머리를 차량 한 가운데서 기대고 있으니 비 냄새가 스며들었다. 아! 우산을 안 챙겨왔는데.


날이 저물어서, 마을과 강가를 어슬렁거리며 사람 사는 구석들을 기웃거릴 때, 쓴 글과 읽은 글이 모두 무효임을 나는 안다. 


우리 남매들이 더 이상 울지 않는 세월에도, 새로 들어온 무덤에서는 사람들이 울었다. 이제는 울지 않는 자들과 새로 울기 시작한 자들 사이에서 봄마다 풀들은 푸르게 빛났다.


조금 읽다 보면 어처구니를 어디에 떼어 먹은 것을 넘어서 기가 차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을 수 있지? 그가 김승옥을 두고 했던 표현을 빌려보자면 나야말로 김훈이라는 벼락을 맞은 느낌이다. 


벼락이라는 단어를 적으니 김영하의 피뢰침이라는 단편이 생각났다. 내게 있어서 번개는 어느 수목원인지 식물원인지를 갔던 날 쏟아지는 소나기와 더불어서 눈 앞에 보이는 산의 정상을 번개가 쩌적 하고 때린 인상으로 남아있다. 고막과 심장이 터질 듯이 쿵쿵거리면서 눈이 멀듯이 세상은 시퍼렇게 날이 섰다.



#4


봄이 온다는 의무감이 섞여 소개팅을 나갔다. 오늘은 여러모로 날이 아니었다. 사소한 지하철의 지연, 엘리베이터의 놓침, 같은 옷을 입어도 몸에 맞지 않는 부자유스러운 민감함이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나는 만남이 잘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양 발의 무게로 짊어지고 나갔다. 서로가 얼굴이 보이지 않는 가면을 쓴 채 이야기하는 순간은 얼마나 값지고도 눈부시던가. 


소개팅으로 서로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원래부터 어려운 것이라지만 매번 만남 뒤에 느끼는 죄스런 허망함은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이다. 연애라는 전선에서 대가이자 전략가를 자처하는 박군에 따르면 이 싸움은 단 한 번의 승리면 족할 터이지만 나는 계속해서 나 자신에게 패배하고 만다.



#5


재활의학과 실습의 마지막 날, 원로 교수님이 학생들을 모아놓고 한 홉의 숨을 들이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는 배우자, 1등 의식, 인문학을 넘나들면서 길게 이어졌다. 


교수님들 가운데는 어느 분야를 가게 되든 1등, 최고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보고 스스로 1등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역설하는 분이 있고, 반대로 하는 만큼만 하라면서 어느 방송에서 나왔을 법한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면 된다는 힐링을 하시는 사람도 계시다. 


열심과 욜로는 1980년대의 삶에 대한 천착과 2010년대 이후의 행복론에 대한 30년의 다리 위에 놓인 세대 간의 다툼일까? 기계적인 근대 사고방식과 파괴적인 포스트 모더니즘의 대립일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마음 한편에는 열심이고 싶지만 다른 한 구석에서는 늘어지고 싶은 욕망도 공존한다. 한 번 사는 인생을 후회 없이 살자는 마음가짐과 즐겁게 살자는 마음은 공존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의사로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삶은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의 마음이 어찌나 무거운 괴로움에 휩싸이는 것인지.


틈만 나면 휴게실에서 잠을 청하는 동기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는 자는 게 남는 것이라는 모토가 뿌리 깊게 박혀있었다. 반면에 나의 지인은 근면주의를 바탕으로 잠은 무덤 속에서 영원히 잘 수 있는 것인데 아깝지 않냐는 모토를 가지고 살아간다. 어느 한 극단을 택하지 못하는 나는 오늘도 고민을 한다.



#6 


마지막으로 교수님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종교를 강조하셨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생각이지만 나는 글과 책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한다고 생각한다. 활자는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종교와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거꾸로 일주일을 적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