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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월달 인턴의 끝은 조용하게 시작해서 조용하게 끝났다. 떠들썩한 본원의 당직실과 숙소를 뒤로 한 채 지방의 파견병원에서 마무리를 하는 것이 못내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떠날으로 조용히 사라지겠다면서 다른 지방 파견병원으로 내려간 어느 동기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한적한 응급실의 밤은 길었고 응급구조사 선생님들도, 간호사 선생님들도 모두 젊고 기운넘쳤다. 밤을 꼬박 새고 이른 아침에 오프를 받아 나가면서 술한잔을 하러 식당으로 향하는 그들의 걸음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인턴을 하면서 체력이 많이 상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술기를 하면서 수시로 허리를 굽혔다 피는 것이 힘들었고 한동안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고 원래도 밝았던 잠귀는 날카로워져서 새벽마다 뒤척이는 일이 이어졌다. 

 

그래도 함께 한 동기들을 뒤로 한 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2

 

전공의의 길은 인턴과는 다르게 개인전에 가깝다. 소속감은 옅어도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던 인턴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지고 뿔뿔히 흩어져 둘셋이 모여 각자의 길을 가기 때문이다. 협업하는 일보다는 서로 신경싸움을 하거나 떠넘기는 일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컨설트낸다'는 병원의 표현을 한글로 적으려고 했는데 떠오르질 않는다. 벌써 그렇게 병원의 인턴물이 나에게 빠져나간 것일 수도 있다. 

 

평소에 나는 꼭 한번쯤 로컬의 뜨거운 먹거리인 피부 미용 분야를 겪어보고 싶었기에 이맘때쯤 정신없이 면접 날짜를 잡고 강남으로, 경기로, 심지어 조금 더 먼 지방으로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코로나로 축소된 시장의 여파는 생각보다 초짜의사에게 가혹하기도 했고 좋은 자리를 알아보는 눈이 없었던 나는 좋은 밥상도 뒷걸음칠 치다가 걸려 엎어버렸다. 

 

돌이켜보면 첫 면접자리가 가장 좋은 곳이었는데. 알수가 있나. 허탈해진 기분으로 점점 인턴을 수료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구직의 시간은 초조해져 갔다. 면접을 열댓군데, 지원서를 수십 곳에 날리고 나니 취준의 고통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느긋하게 한두달 쉬는 것도 마땅히 고려해볼 수 있었지만 일을 쉬어서는 안된다는 압박감과 어느 곳에서도 나를 쓰길 원하지 않는다는 의혹은 나를 갉아먹었다. 시간을 나의 것으로 주인처럼, 편한 친구처럼 대해야 하는데 구직자의 시간은 자꾸만 나를 채찍질하고 조급하게 만들고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3

 

응급실의 일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밤을 새고 구석 침대에서 쪽잠을 자는 나날이 퐁당퐁당 계속되었고, 내과에서 합을 맞췄던 J군이 함께 파견을 나와 당직을 같이 새곤 했다. 우리는 말턴의 짬으로 서로의 일을 대신 처리해주고 시간을 빼주며 나름의 끝을 즐겼다. 동기들이 나를 대신해 밥을 포장해 받아와 숙소에 넣어놓으면 사식처럼 응급실을 빠져나와 낄낄거리며 먹고 침대에 기대 빈둥거리곤 했다. 차트를 무한 새로고침하다가 인턴잡이 생기면 호들갑을 떨며 응급실로 들어가 처리하는 시간도 즐거웠다. 

 

남은 글을 몽땅 써내려가려고 마음먹었던 것도 떠올려보니 2월달이었다. 응급실의 밤은 충분히 길었고 새벽교대 시간이 다가와 눈을 뜨면 찌뿌듯한 몸과 피로가 덮여 번들거리는 얼굴의 느낌이 몹시 걸리적거렸다. 글쓰기로 시작했던 남은 밤시간은 웹툰을 거쳐서 미국주식까지 몽창 오가면서 내 얄팍한 취미의 바닥을 드러내고는 꺼져버렸다. 투입이 있어야 산출이 있는 것은 기계와 인간을 막론하고 공통인데, 인턴기간 내내 투입되는 정보나 지식없이 무감정한 톱니바퀴처럼 일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 일년간 의사로서의 나는 어떤 평가를 받았을지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의 나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건조했다.

 

 

#4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행복했다. 지난 일년의 괴로운 순간들을 웃어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나를 의지하고 밀어주고 등두드려준 사람들 덕분이었다. 나는 홀로서서 나만의 작업을 좋아하는 사람인줄만 알았는데 내 생각보다 훨씬 사회적이고 무리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따지고보면 내 이상속의 의사상도 그랬다. 나는 다수를 구하고, 대의를 가지고 저 하늘의 빛나는 별이 되길 바랬던 적은 아마 없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주변의 사람들 한둘, 내 손 안에 닿을 수 있는 범위의 작은 선을 나만의 기준 속에서 행할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하고 보람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 지상에서 떨어진 저 외딴 섬에서 홀로 법 앞에 서있을 김군이 듣는다면 대성통곡하여 복숭아 밭의 결의로 나를 흔들겠지만 말이다. 

 

인턴시기는 일을 제외하고 남는 시간을 한가지에 오롯이 쏟아붓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나는 그것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썼고 일의 괴로움과 고됨을 달래, 메마른 나를 풍성하게 해주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매사에 다른 사람에게 추천을 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나는 인턴의 힘든 시간 속에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머지의 시간을 사랑하는 이들과 보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인턴은 두달도 전에 진작 마쳤지만 내 마음 속에서 병원의 가운과 수술복은 이제야 해방되는 인상이 있다. 내가 처음과 마지막에 있어서는 쓰는 인간임을 부정할 수 없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즐거웠다. 안녕 내 인턴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