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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의속삭임 (83)
인턴 네번째 턴 정형외과2 : 실신3

#1 아마 본원 정형외과는 일 년 열두 번 턴 가운데 가장 힘든 곳인데, 이제와서는 너무나 미화된 기억들밖에 남지 않아 아쉽다. 힘든 것은 둘째치고 글을 적고 생각에 빠질 시간마저 없었던 것 같다. 보다 날것의 기억을 생생하게 적어올렸으면 좋았겠지만 말이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훈련소 시절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래도 논산에서는 하염없이 끝나지 않는 행군을 계속하면서 떠오르는 망상과 상념 속에 몸을 내던질 수 있었다. 반면에 정형외과 인턴 시기 동안은 그러지 못했다. 더 힘들었던 것이거나 혹은 할만했던 것일수도 있다. 동기들과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어 환기하고 그 와중에 킥킥거리면서 웃음을 통해 고통을 해소하는 나름의 방법을 찾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한 해의 끝자락에 도착한 지금 생각해봤을 때 나의 인..

자판의속삭임 2020. 12. 8. 08:58
인턴 두번째 턴 파견병원 내과 : 기차여행

#1 워낙에 오래된 기억을 다시 적으려니 조금 생소하다. 파업이라는 커다란 물결 덕분에 시위를 제외하고도 개인적인 시간이 제법 생겼기에 천천히 적어보려고 자리에 앉았다. 집을 며칠 비운 사이에 전등이 나가 어두운 방 안에서 홀로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다. 두 번째 턴으로 가게 된 병원은 지방의 신설된 2차 병원이었다. KTX를 타고 역에 내려서 다시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타고 조금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과 도시의 적당한 중간에 병원이 위치해 있었다. 선로가 크게 늘어서서 20량짜리 KTX들이 오가는 역은 어두컴컴한 지하철 역 앞에 서서 늘 광고판이나 스크린에 적힌 시나 보고 있었던 내게는 한 없이 거대했다. 거대했고, 지상에서 불어오는 겨울 끝에 실린 봄바람은 한없이 달콤하고 따사로웠다. '이게 파견이구나'..

자판의속삭임 2020. 9. 20. 13:23
인턴 다섯번째 턴 내과 : 동업자정신

#1 우리가 인턴잡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술기는 내과에서 그 정점을 찍게 된다. 학생 때 느낀 내과 삼대장은 순환기, 호흡기, 소화기였는데 환자의 생명이 아마도 초, 분, 시간 단위로 직결되는 순서로 삼대장을 다시 세우면 호흡기, 순환기, 신장이라고 하는데 아마 이견이 없을 것이다. 운이 나쁘다고 해야하나? 나는 호흡기, 신장파트를 커버하게 되었다. 분 단위로 날아드는 채혈과 침습적인 여러 잡술기와 콜은 우리를 미치게 했다. 특히나 새로운 환자가 입원했을 때 우리가 신환세트라고 부르는 술기세트가 스테이션 위에 여러개 놓여있으면 정말 정신이 나가게 된다. 환자 한명에게 붙어서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한시간까지 걸리는 종합 술기 바구니가 선물보따리처럼 푸짐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과에서는 하..

자판의속삭임 2020. 8. 21. 09:04
인턴 세번째 턴 응급의학과 : 삶과 죽음3

#1 블로그에 글을 쓸 여유가 생각보다 없었다. 이야깃거리는 많았는데,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오프 때의 시간을 여러 곳에 쪼개서 쓸 수 없다 보니 머릿속에 들어있던 글은 실타래처럼 풀어졌다가 헤지면서 시간이 지나 흩어져 날아가곤 했다. 보고 느꼈던 것들도 옮겨 적고 싶었던 것들도 무척이나 많았으나 막상 자판 앞에 돌아오니 남은 것은 많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 한숨을 돌릴 시간이 난 어느 저녁에 지난 턴들을 회상해본다. 응급의학과에 대한 작은 열망이 있었는데, 인턴으로 직접 돌아보니 열망의 불씨가 커져서 일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응급실에서 인턴이 하는 일들과 전공의들이 하는 일은 무척이나 달랐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하고싶은 인상적인 과의 첫 번째 칸에 응급의학과를 ..

자판의속삭임 2020. 6. 29. 22:23
인턴 첫번째 턴 정형외과 : 센티멘털리즘4

#1 인턴오리엔테이션 교육을 받으면서 몇 가지 술기들을 떨리는 마음으로 배웠던 게 어제였던 것 같은데 정신없는 첫 번째 턴이 끝났다. 첫 번째 턴은 정형외과였고 수술과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던 내게 있어서 관심과에 해당하는 과이기도 했다. 수술과는 병동일만큼이나 수술방에서의 일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 장점이자 곧 업무량으로는 단점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수술방을 준비해 수술의 보조를 하거나 빠져나와서 다음 수술방을 준비하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해질녘을 향해 달려가는데 매일같이 해야 하는 잔업들도 쌓여간다. 효율적인 일처리가 정말 중요한데 서류를 1층에 가져다 놓으면서 아차! 1층에서 받아올 게 있었지! 싶을 때 정말 내 머리를 한 대 때려주고 싶다. 다 씻고 잘준비를 마치고 당직 침상에 누웠는데 아!..

자판의속삭임 2020. 3. 29. 11:51
본과를 마치며

#1 4년이라는 시간은 지극히 짧은 시간이다. 나는 4년간 아무것도 해낸 것이 없다는 생각을 떨치기 위해서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의 촉이 되어 가르고 지나온 바람들을 생각한다. #2 무난하게 국가고시를 통과했다. 끝까지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머리를 쥐어뜯던 그 박군도! 무사히 시험을 넘겼다. 수십 년 평생 잘못된 길을 밟아왔다고 주장하는 박군에게 의사면허는 아마 그 잘못된 길의 끝에서 얻는 보잘것없는 한 줌의 승리다. (혹은 그의 주위에서 박군을 밀고 끌었던 우리의 승리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제 사회로 나갈 그의 자유로움에 박수를. 국가고시를 치르고 난 며칠 뒤 터미널에서 둘이 만나 시험과 의학을 물고 뜯고 씹으면서 음료를 마셨다. 박군은 늘 라떼만 마시고 나는 늘 휘핑크림을 뺀 초콜릿만 마시며 냅킨과..

자판의속삭임 2020. 1. 21. 15:08
본과 4학년 2학기 12월 넷째 주 : 산은 길고 물은 넓어

#1 본과2학년 때 정신건강의학과 수업을 듣다 보면 용어나 개념 하나하나가 글을 쓸 수 있는 소재였기에 모아두었는데, 어느새 훌쩍 시간이 흘러 본과를 닫을 시간이 되었다. 국가고시 필기시험을 준비하면서 다시 그때 모아둔 단어들을 요약집에서 다시금 마주치니 기분이 새롭다. 흔하게 기시감Deja vu이라고 하는 말의 대응되는 미시감Jamais vu이라는 단어가 있다. 늘 보아오던 알고 있던 대상이 새롭게 느껴지는 개념으로 내가 글자들을 보면서 종종 느끼는 감각이었다. 가만히 글자의 틈새를 들여다보면 언어는 쪼개져 부서질 것처럼 보였고 다시 고개를 저어보면 내가 아는 단어는 한없이 생소했다. 그럼 나는 몇 번씩 입안에서 글자를 처음 배울 때처럼 단어를 씹고 섞어 삼켰다. 적다 보니 느껴본 적 없는 생소한 감각..

자판의속삭임 2019. 12. 26. 01:03
본과 4학년 2학기 11월 넷째 주 : 에우리디케 앞에서

#1 본과가 끝나간다. 국가고시의 필기가 일월초에 있기 때문에 12월에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잘 들지 않아서 지금 자판을 조금 두드린다. 실기시험을 앞뒀을 때의 기분이 꼭 입대를 앞둔 사람의 심정마냥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고, 즐겁지 않았는데 졸업과 수련을 앞둔 지금의 심정도 비슷하다. 역행하는 인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내게 커다란 문을 빠져나와 한 시공간을 넘어갈 때의 여운은 모질게 느껴질 정도로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행복한 기억, 후회스런 기억, 떨쳐내지 못한 것들이 한데 뒤섞여 고삐풀린 망아지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뛰어다닌다. 연말이라는 시간은 으레 그런것이다. #2 인사에 실패했다. 사람의 일이라는 인사와 실패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무척 딱딱하고 척 보기에도 인간관계에 서..

자판의속삭임 2019. 11. 25.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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