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배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수련의, 의대생들의 결혼식은 1, 2월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 시기가 유일하게 전공의들과 본과생들 모두 학년과 면허와 자격증을 넘기면서 한시름 꺾어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학년적으로 보면 조금은 여유가 있는 레지던트3년차 이후에 결혼하는 경우가 많고, 본과를 마치고 공보의를 준비하며 예식장에 들어가는 남자 선배들도 있다. 드물게 인턴이나 레지던트1년차, 본과생 시절에 결혼하는 사람도 있다. 상대로 본다면 학내 커플인 CC의 경우도 간간히 있고, 외부 사람들과 결혼하는 경우도 적지는 않은 편이다. 결혼 상대방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속물적인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CC가 아니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면 비슷한 의치한약계열의 전문직을 만나는 경우가 꽤 있다. 내가 농담조로 같은 ..
일주일간 골학과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본과로 진입하는 예과세대와 의대편입생들에게 의대생활에 대한 과정을 설명하고 분위기를 짚어주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의대마다 골학과 오티는 조금씩 양식이 다르겠지만, 선후배관계와 본과시험의 어려움을 준비시키려고 학문과 관계성의 고통을 맛보게 해주는 것은 비슷할 것이다. 나는 그런 관계성도, 의미없는 형식도 학을 떼고 싫어하는지라 골학에 본2로서 참여하지는 않았다. 후배들에게(의전-의예관계를 후배로 그들이 받아들여준다면) 미안했기 때문이다. 내가 예비 본1이던 오티기간에 들었던 선배들의 말중에 가장 인상적이 었던 것은 '좋았던 부분은 그대로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싫었던 부분은 바꾸어나가도록 해라'였다. 그렇기에 나는 다소 억압적이며 꽤나 권위적인 의대의..
그랜드캐년에 도착해서 안내관에 들어가면서 찍은 가이드맵. 시네마 상영관 형식으로 해서 그랜드캐년의 역사와 지리와 문화예술적가치 하면서 쭉 동영상이 나오는데 영화관 시설도 꽤 좋았고 영상도 흥미있어서 재미있게 보았다. 역시나 함께 간 현지인들은 별 관심이 없었지만(국립중앙박물관 같은데서 영상으로 설명을 하면 아무 감흥없이 멍때리는 내가 생각났다) 대충 이런모습이다. 재미있는 것은 함께 갔던 집주인은 그랜드캐년의 인근 지역에서 내내 살아왔던 현지인이었는데도 한번도 와본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역시나. 흔하게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보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더 서울을 모른다'라는 말을 하는데 맞는 것 같다. 당장 나는 내 집주변만 해도 누가 거기 xx맛집이 있는데? 그러면 오잉? 으엥? 하는 일이 많다. 특별히 ..
다음은 코스트코. 미국하면 역시 코스트코! 할정도로 물건을 팡팡 쌓아놓고 팔고 있었고 쌓아놓고 판다는 것 외에도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식재료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서 정말로 정신이 다 빠져나갔었다. (나는 마트구경을 정말 좋아한다) 그와중에 한국에서도 못 먹어본 ZICO 코코넛 음료수가 있어서 찍어봤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중에 귀국해서 편의점에서 사먹어봤는데 충격적일 정도로 맛이 없었어서 그 때 미국에서 사마시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즉석조리식품의 천국이었다. 이런건 레토르토나 즉석조리로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메뉴도 다 있었다. 그리고 정말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사가더라. 가격대는 너무 저렴하지도 비싸지도 않은 보통이었던 것 같은데 양이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가성비'는 훌륭했던 것 같다. 고기..
#0 어디에 적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이 블로그에 적기로 했다. 혼자있길 좋아하는 나로는 드물게 움직였던 유년기 이후로의 첫 해외여행이기도 했고, 느꼈던 바들을 적지 않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다른사람보다는 나중에 내가 다시 읽어보면서 그때의 참 좋았던 기분을 떠올리고 싶었기에 가장 황량한 이곳에 적어본다. 인천공항에서 바라본 창밖. 아주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면 비행기 장난감이나 자동차로 주차장을 만들고 놀았던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비행기가 주차해 놓은 느낌이라 공항 밖의 풍경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혼자서 밖을 찰칵찰칵찍는다는 것이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대합실에서. 너무 일찍 도착해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책을 한 권 들고 갔었기에 책을 보았던 것이 생각난다. 꽤 읽었는데..
#1 본과생의 방학동안 '본과', 그러니까 의대생활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의대생들이 방학동안은 두꺼운 전공책과 프린트, 그리고 사사로운 일에서 번잡한 일까지 동기들과 부대끼는 삶에서 멀어지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야말로 학기중에 머리 속에 가득 집어 넣어둔 책장을 방구석 깊은 곳에 몰아넣고 꽁꽁 걸쇠를 걸어 닫아버린다. #2 방학에 의대생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몇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이러저러한 직책과 책임으로 학교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학교 일에 묶여서 방학을 연소시킨다. 방학을 온전히 방학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부질없어 보일 수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면서 타인을 위해 방학을 보낸다는 것이 어찌보면 '의사다운' 느낌이었기에 나는 그들..
#1 본과1학년의 생활이 점점 마무리 되어가는 것이 피부에, 눈가에 와닿는다. 무거웠던 1학년의 짐들은 물에 빠진 소금자루처럼 스르르 사라지고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2학년의 족쇄들이 머리 맡에 던져진다. 올해의 일년은 유난히도 짧았고 한 해의 마지막 밤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모든 일의 시작보다 끝을 좋아한다. 내가 과거에 붙잡혀 사는 시대착오적인 인간이기 떄문일수도 있고, 무엇이든 되새김질해서 여러번 부드럽게 쑤어 넘기길 좋아하는 동물이기 때문일수도 있다. 축제의 마지막, 여행의 마지막 밤, 연인과의 이별을 예감한 마지막 통화. 끝을 예비하는 모든 것들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뭉클거리고 있다. 그것을 다분히 베르테르적인 우울한 감정이라고 한다면 반론하기 어렵겠지만 어쨌든, 나는 모든 일의 시..
#1 땡시를 보았다. 땡시는 의대에만 있는 특이한 시험인데 해부표본, 육안사진, 조직사진, 혹은 현미경 슬라이드 더 나아가서 아무 것이나 시험으로 내고 싶은 것을 슉슉슉 던져놓고 길을 만들어 놓으면 10초에서 15초 정도의 시간동안 슥 슥 슥 지나가면서 답을 적어나가는 시험이다. 매우 스피드하게 한 사람씩 건너뛰면서 출발하는데 땡시를 가장 빠르게 혹은 가장 늦게 보는 출결번호의 특성상 나는 아마 내 동기들의 표정을 꼼꼼하게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정답을 빠르게 쓰고 느긋하게 찰나의 딴생각을 하는 표정이 있는가 하면 15초 동안 연필을 씹어먹을 기세로 기억을 헤집는 표정도 있다. 15초 남짓한 시간은 정말 짧아서 글씨를 느리게 쓰는 사람은 상당히 애를 먹게 된다. 아마 이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