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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과 4학년 2학기 10월 넷째 주 : 연기

#1 약 한달간의 연습을 끝으로 실기시험을 마무리했다. 의사국가고시는 필기와 실기로 나누어져 있다. 필기가 지식적인 부분을 물어보는 과정이라면 실기는 몸으로 행하는 술기와 환자를 대하는 진료를 평가한다. 인공호흡모델을 연상하면 떠올릴 수 있는 '애니'와 유사한 모형들에 몇 가지의 수기를 행하고 환자역할을 맡은 연기자들에게 모의진료를 연기한다. 절차기억처럼 몸으로 익혀야하는 술기문항도, 연기자를 상대로 환자-의사관계와 의학적인 Impression을 잡아가는 진료문항도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시험의 압박과 더불어 한달간 끊임없이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달 정도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늘 나를 곱씹어보기엔 더없이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2 내 삶은 역시나 형광등..

자판의속삭임 2019. 10. 23. 22:38
본과4학년 2학기 9월 셋째 주 : 따릉이

#1 블로그에 글을 몇 번이나 적었다가 임시저장만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적고싶은 내용, 그러니까 소재가 없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자판을 치기 싫을 때가 있다. 날이 아니라고 생각해 대차게 노트북을 덮고 뛰쳐나가는 날이 2학기의 계속이었다. 괴로워야 글이 나오는 룸펜기질로 돌이켜보건데 본과생의 4학년 2학기는 한량처럼 사치스럽게 날릴 수 있는 시간이었음이 틀림없다. 아직도 꽤 남았지만. #2 그간 몇 번의 모의고사를 보았다. 의사시험은 실기, 필기로 이루어져있고 필기에 대해서 모의고사가 진행된다. 고등학생들이 전국단위나 사설학원의 모의고사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공부를 꽤나 했음에도 이번 모의고사 성적은 형편없었다. 합격 불합격을 떠나서 공부를 하지 않던 맨땅에서의 점수와 별 차이가 없었다. 자투리 시간..

자판의속삭임 2019. 9. 21. 23:43
본과4학년 2학기 8월 셋째 주 : 육첩방의 곰팡이

#1 방학이라 내버려 둔 비좁은 방에는 어김없이 곰팡이가 슬었다. 일주일 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을 슬쩍 들어와 훑고 갔을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건만 오산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비좁은 공간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부터 문드러져 갔음에 틀림없다. 안경 속 눈은 나태하고 건성으로 방을 훑었고, 나는 신을 꺾어 신고 콧바람을 흥얼거리며 여름의 뜨거운 바람을 맞으며 달라나갔다. 육첩이나 되는 공간의 방도 사람이 손이 닿지 않으면 쇠진할진대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나의 글이나 행동거지를 거울을 보고 새롭게 다짐하지 않은지 얼마나 지났던 것인지 날짜를 세어본다. 전문대학원에 합격한 이래의 가장 긴 나태의 시간이었음이 틀림없다. #2 졸업학년인 본과4학년의 2학기는 대단히 별 것이 없다. 국가고..

자판의속삭임 2019. 8. 16. 12:52
본과4학년 1학기 여름방학 : 인상주의2

#1 마지막 모의환자 시험을 끝으로 4학년 1학기의 정규과정이 끝이 났다. 지난 시험을 만회하기 위함이었을까. 나는 괜찮은 인상을 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준비를 했다. 같은조의 C군이 보자마자 "신경 좀 썼네?"하고 반색했다. 이전까지는 적당히 깔끔하고 전문적인 인상을 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마치 소개팅에 나가는 사람처럼 하고 나갔다. 아무렴. 연기자들도 우리를 만나 연기를 하는 것인데 나도 연기를 해주리라. 나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아온 사람인 동생마저 내가 가면을 쓴 채 말하는 '안녕하세요'부터 평소와 너무 달라 웃긴다고 늘 말하곤 한다. #2 시험기간 틈틈이 책을 읽었다. 공부를 길게 이어나가는 것이 지겹기도 했고 나의 독서습관이 자리에 앉자마자 몇 십..

자판의속삭임 2019. 7. 6. 00:53
본과4학년 1학기 시험기간 : Retrograder

#1 기나긴 한 학기가 저물어간다. 나는 이것이 이번 학기의 마지막 글일 것을 예감하고 이른 아침에 노트북을 폈다. 보통 글을 적는 시간은 어둑한 밤이었는데, 시간을 잊고 이른 아침에 자판을 열었다. 찡긋거리면서 유쾌한 글을 적어내려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다행스럽게도 그럴 수 없었다. 시험기간은 본과생에게 있어서 지긋지긋한 정신적인 타락을 안겨주는 시간이고 내 글의 본질은 고통으로부터의 도피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2 여러 남은 실습과들을 돌았다. 대부분이 수술과였던 마지막 실습은 벼랑 끝에서 그리 멀어보이지 않았고, 전공의와 교수님들의 삶은 별처럼 발갛게 달아올랐다가 불씨처럼 꺼질것처럼 희미해졌다가를 반복했다. 스물여섯시간동안 진행된 수술방의 아침 살풍경에서 경이로움의 너머로 지친 양 손을 보기도 했다..

자판의속삭임 2019. 6. 6. 11:30
본과4학년 1학기 마취통증의학과 : 센티멘탈리즘3

#1 마취통증의학과는 아침이 가장 빠른 전공과 중에 하나일 것이다. 8-9시에 시작되는 오전 수술 전에 컨퍼런스와 브리핑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꼭두새벽부터 김밥과 토스트를 우물거리면서 수술복에 마취과 자켓을 걸친 대규모의 인원이 의국에 모이는 풍경은 퍽 볼만하다. 보통 수술방마다 마취과 전공의가 상주하며 환자를 모니터링하는 것이 기본이기에 몇십 개의 수술방을 운영하는 대규모의 병원은 그만큼의 마취과 인력도 운용해야 한다. 수술방의 마취과 영역에서 전공의 선생님들이 여러 기구들을 능숙하게 조작하고, 모니터링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비행기 파일럿이 떠오른다. 수많은 버튼과 스위치가 무엇에 쓰이는지 이해하고 있고 별다른 의사소통 없이도 노란 손잡이를 돌리는 것으로 요구에 대한 만족이 따른다. 낯선 언어를 바..

자판의속삭임 2019. 4. 29. 20:46
본과4학년 1학기 안과 : 불새

#1 독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으슬으슬 열이 나는 것 같고 두통이 있어 감기로 자가진단을 내리고 통증을 낮추어주는 진통효과가 있는 아세트아미노펜을 먹었다. 이부프로펜, 나프록센 같은 염증을 가라앉히고 진통효과도 있는 NSAIDs 로 불리는 약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어처구니없어 보이지만 약국에서 속효성으로 나오는 액상의 NSAIDs 약을 복용했을 때 유독 내가 속쓰림을 심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NSIADs는 소화기-위장에 있어서 소화불량이나 위염과 같은 가벼운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진통효과로 버티면서 몸의 자체적인 면역기능으로 감기를 넘기려고 했는데 일주일이 다 지나도 감기 기운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항염효과까지 노렸어야 했나? 일반적인 감기는 약을 먹어도 낫는데 ..

자판의속삭임 2019. 4. 21. 22:38
본과4학년 1학기 피부과, 비뇨의학과 : 날카로움과 아름다움

#1 피부과 외래에서 진료를 위해 들어올 환자의 이름을 부르고 있으면 가끔 무대공포증처럼 사람들의 눈을 마주하기가 두려울 때가 있다. 특히 간밤에 늦게 자고 헤롱거리면서 병원에 출근했을 때. 환자의 절반은 나를 피부과의 초년차 의사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헝클어진 머리, 삐딱하게 목을 죄이는 넥타이, 후줄근한 가운과 늘어진 눈 밑의 검은 그늘. 당직이 빡셌나보군. 실습을 돌면서도 이렇게 나를 돌보지 못하고 있는데, 수련 중에 깔끔한 인상을 주는 의사가 되는 것은 이미 틀려먹었다는 생각이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의사라는 집단을 쥐어잡아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아름다움, 미의 단두대 위에 올려놓으면 형장의 거울도 코웃음을 칠 것이다. 머리나 감고 말해라! 진료실이 더워져 나는 넥타이의 매듭을 느슨하게 풀었다..

자판의속삭임 2019. 4. 8.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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